정혜신이 전하는 공감의 미학
친구 K는 요즘 어느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직장에서 그녀의 연차와 역량으로는 쉽게 맡을 수 없는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것이다. 어찌 보면 행운이다. 빙하보다 꽝꽝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그녀의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K는 프로젝트를 맡은 후부터 신체의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생리불순, 부담감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로 발현된 것이다.
처음 그녀의 고충을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처음 들었을 때, 사실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충분히 똑부러지고 유능한 친구였기에 자신이 무능한 것 같다는 독백을 흔한 노파심이라 여겼던 것이다.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흔히 오는 성장통이라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K의 고민은 꽤 오래 지속됐다. 같은 사회초년생으로서 공감이 갔지만 매번 쳇바퀴처럼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에 답답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기어코 난 말실수를 했다. 너의 이런 푸념이 난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괜찮지 않을 거라고,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말이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났던 사람은 바로 K였다. 이 책의 주제가 바로 '공감'이어서 그렇다. 내가 K를 위해 건넸던 말들이 위로가 아닌 폭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다.
처음 '당신이 옳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나 억지위로를 보기 좋게 편집한 책이라 멋대로 판단했다. 마음이 아픈 현대인들이 위로를 위해 집어든 그렇고 그런 책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첫 챕터를 읽고 나서 이러한 고정관념은 보기 좋게 깨졌다. 30여년 간 정신과 의사로 일해왔고, 지금도 현직인 저자의 단호한 목소리 때문에 그렇다. 저자는 순간적인 의학적 판단과 약물치료로 트라우마를 정의하고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가령, 저자는 많은 트라우마 현장에 파견된 전문가들이 무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가 피해자를 환자로 일반화하려는 오류 때문이라 말한다. 재난 현장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우울증'이라 단정 짓고 약처방을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다.
현직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정신적 트라우마의 해결법은 약물치료가 아닌 바로 '공감'이었다. '경청', '이해' 등과 같이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음에도 어찌해야할 지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는 추상적인 단어다.
저자는 공감을 심리적 CPR이라 정의한다. 각박해진 세상에 자기 아픈 마음 하나 내보이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이러한 전조가 드러났다는 것은 이미 위험신호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있으면서도 낌새조차 내보이지 않고 소리없이 스러지고 있는 것이 많은 현실이라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심장 충격기 같은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당신이 옳다' P.58 중에서-
저자는 허울 뿐이 아닌 진정한 공감을 위한 여러 방안을 친절히 제시한다. 무조건적인 수긍과 칭찬만이 공감은 아니라는 것, 좋은 공감을 해주려면 스스로의 존재를 먼저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옳은 공감은 생각도 못했던 치유의 힘을 지닌다 말한다.
평소 책을 읽을 때 늘 형광펜을 함께 지니는 편이다. 기억하고 싶거나 인상깊은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치거나 표시한다. 그렇게 하면 그 구절이 내 마음속에 담기는 느낌이 들곤 한다. '당신이 옳다'를 읽는 동안에는 형광펜을 놓을 수가 없었다. 평생 내 가슴속에 담고 싶은 문장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호흡이 가빠 산소 호흡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양념치킨을 시켜준다면 고마운 일도 아니고 도움이 될 리도 없다.-'당신이 옳다' P.51 중에서-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하지 말야 한다.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야 한다. -당신이 옳다' P.106 중에서-
K의 푸념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은 아니었을까. 욕심을 버리고 초연해지는 것, 어쩌면 답은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있을 터였다. 그녀는 어줍잖은 충고가 아닌 공감이 무엇보다 절실했을 거다. 내가 사과를 한다면 그녀는 내 사과를 받아줄까. 분명 웃으며 상처받은 적도 없이 씩씩한 듯 굴것이다. 어쩌면 공감의 방법은 그녀가 더 잘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