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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Sep 18. 2020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book reveiw

오랜만에 찾은 서점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한 이 책을 보며 예민한 사람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잠시 생각했다. 무던해지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요즘의 이 경쟁사회에서 안 예민한 사람이 있을까. 그 누군가에게는 예민함의 포인트가 본인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되는 뭐 그런 근소한 차이 정도가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예민함의 기준은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인다는 것이다. 타인의 미세한 표정변화나 말투의 고저, 그의 대략적인 성격, 그리고 미묘한 분위기 뭐 그런 것들이다. 내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나는 꽤 예민한 사람이다.


내가 가진 예민함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책을 홀린 듯이 결제했다. 세상에는 참 예민한 이들이 많구나. 하지만 그 예민함,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게 이 책을 완독한 후 전체적으로 내린 총평이다.


‘Highly sensitive persons(HSP)’는 직역하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인데 의학적인 용어나 질병명은 아니다. P.17


이 책은 예민함에 대해 다룬다. 우리가 예민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뇌과학의 변화 뿐 아니라 예민함의 구체적 사례가 주된 내용이다. 이 책을 통해 주목한 것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모를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에 지나치게 신경쓰던 아무개의 증상은 흔히 관계사고(Ideas Of Reference)의 일종이었다. 아버지의 술주정과 과격한 행동을 싫어하면서도 똑같이 닮아가던 아무개의 이런 행동은 공격자와의 동일화에 해당됐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예민함이 있고 그것은 병도, 결점도 아니다. 우리 누구나 어떤 종류의 것이든 예민함은 있다.


처칠은 우울증이 올 때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극복했다고 한다. 그가 우울증에 대해 유용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울증은 그를 깊은 생각으로 몰아넣어 글을 쓰도록 만들었던 듯 하다. P.63


이 책은 예민함의 종류만 나열하고 끝맺는 무책임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가진 예민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예민함이 어떤 종류의 능력으로 발현될 수 있는지 예민함을 결점이라 생각했던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흔히 고통스러워야 글이 잘 나온다고 했던 공지영 작가나, 돈이 급해야 연기가 절실하다고 말했던 배우 윤여정 씨처럼 처칠 또한 우울증을 통해 뛰어난 글과 그림을 얻었다. 깊은 심연의 생각들이 퀄리티 높은 작품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예민한 사람은 ‘현재’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잊어버리는 과거의 기억을 연상해서 현재와 연결 짓는 것은 스스로를 더 예민하고 우울하게 만듭니다. 과거 일이 자꾸 생각나면 내가 예민하지 않은지 먼저 체크해야 합니다. 이때는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게 도움이 됩니다. 새로운 책을 읽거나 운동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관심이 전환되면 자연히 기억의 연상과 화는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P.84


개인적으로 나에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구절은 현재에 집중하라는 저자의 조언이었다. 난 늘 과거와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 안됐었는데. 침대에서 매번 잠을 뒤척였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는 내가 바꿀 수 있다. now and here,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


요즘 책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방의 침대 위에서, 스터디 카페에서, 때로는 지하철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니. 책, 정말 읽을 수록 버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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