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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Nov 12. 2019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

  얼마전 이었다. 정확한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명동이었을수도 있고 강남역이었을수도 있다. 워낙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편이라 사람이 무척 많았던 것만 기억이 난다.


  여느때처럼 길을 걷는데 한 할머니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모난 상자를 매고 계신 것을 보았다. 그냥 그런 가방이려니 하고 지나치려는데, 맙소사. 그 상자에는 음식점의 상호명과 주력메뉴가 프린트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행인의 눈을 사로잡고야 말겠다는 음식점의 굳은 의지가 볼드한 폰트와 강렬한 색상에 드러나있는 듯 했다.


  할머님이 나눠주신 전단지를 받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동요가 밀려왔다. 인간 광고판이라니. 기괴한 박스를 매고 이름 모를 이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그녀의 마음은 어떠할까, 나는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이 그녀의 직업인데 누구도 그녀를 동정하거나 참담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그것도 맞는 말이다. 누구도 그녀의 일거리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행인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채 인간 광고판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만약 그녀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차가운 길거리보다는 따뜻한 실내를 일터로 택했을 것이 분명하다.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인식하자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의 노인 소외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상 생활의 곳곳에서 우리는 노인의 소외를 마주한다. 우리는 주요 프랜차이즈 매장의 키오스크에서 머뭇거리며 구매를 포기하는 노인들을 자주 마주친다. 배달 앱의 상용화로 더 이상 음식점의 점주들은 전화로 주문하는 노인들을 반기지 않는다. 그 뿐인가. 노인이라는 이유로, 반응 속도가 젊은이들보다 더디다는 이유로 그들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꾸하거나 면박을 주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고령화 지수가 가장 높다. 2050년이 되면 80세 인구의 비중이 14%까지 증한다는 것이 OECD의 전망이다.


  흔히들 영 밀레니얼 세대를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말한다. 새로운 소비 주체이자 노동인구로서 활약할 영 밀레니얼 세대에게 모든 브랜드가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필자는 다른 의미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하고 싶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젊은이들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노인들일지도 모른다. 2019년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은 가까운 미래를 대비하고 있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어두운 미래를 상징한다.


    지하철 1호선을 타면 노약자석의 그들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종로 3가 탑골공원 근처의 국밥집에서도 따뜻한 국물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그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힘없는 노인이기 이전에 한국전쟁 직후 가난의 시대를 거쳐 몇 차례의 독재정권을 지나온 살아있는 역사이다. 또한 그 역경의 시대 속에서도 잘못된 권력을 바로잡기 위해 주저 없이 거리로 뛰어든 세대기도 했다. 그들의 가치와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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