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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Sep 03. 2020

나 홀로 집에

사회와 멀어지면 집과 가까워진다

평화로운 한낮 에어컨, 책, 이불과 함께



좋게 말하면 외향적, 나쁘게 말하면 역마살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나는 집보다 밖이 편한 사람이었다. 일을 하지 않는 주말에도 늘 하루는 외출을 해야 속이 시원했다. 딱히 약속이 없어도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웹서핑을 하거나 공부를 했다.


집은 답답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적어도 외출을 하면 투 도어 냉장고에 덕지덕지 붙은 고지서들과 연식이 오래되어 버튼이 잘 눌리지 않는 전자레인지는 보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는 해가 바뀔수록 작은 것에도 토라지거나 섭섭해했다. 엄마의 키가 줄어가는 것이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밖으로 나가면 적어도 잠시나마 부채감을 잊을 수 있었다. 나는 비겁했다.


그런 내가 언택트 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까닭은 역시나 엄마 때문이었다. 소주를 몇 병씩 해치우고도 어린 나를 번쩍번쩍 업고 다니던 엄마가 나이 든 것을 실감하는 순간은 바로 엄마의 걱정이 지나칠 때였다. 특히 코로나가 수도권을 덮친 요 몇 주간 모녀의 주 대화는 '어디에서 몇 명이 감염되었다더라'와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엄마는 나의 외출을 불안해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집단 감염자가 속출했다. 외출을 준비하면 엄마는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언론이 코로나의 후유증을 대서특필한 다음부터는 불안함이 눈에 띄게 심해졌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 홀로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답답했다. 걷지 못해 찌뿌둥한 느낌이 들었다. 무기력하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매일 한 끼 정도는 간단히 혼밥을 하곤 했었는데, 집에서 심심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니 입맛도 딱히 없었다.


뭔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외출을 하지 않은 지 3일 후부터였다. 온몸을 휘감던 무력감이 사라지고 더 이상 집안에 머무르는 것이 답답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옷장 정리를 하고 입지 않는 옷은 중고 사이트에 내놓았다. 부지런히 사모았던 화장대의 화장품들을 정리하니 상쾌한 마음까지 들었다. 집에서 건강하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니 체중도 3 킬로그램이나 빠져있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엄마의 24시간을 알 수 있다는 거였다. 집 밖을 나돌 땐 미처 몰랐던 엄마의 루틴이 보였다. 대화를 더 많이 나누며 갈등도 줄었다. 하루 종일 내가 집에 있으니 엄마는 든든한 마음에 낮잠이 늘었다고 했다. 늘 잠을 설치던 엄마였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의 외출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회사에 다녔다면 열흘 간의 집콕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열흘간의 자가격리(?),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사회와 멀어지면 집과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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