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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Feb 21. 2021

'배민다움'을 통해 배우는 '브랜드다움'

배민다움(배달의 민족 브랜딩이야기) 북 리뷰


배민다움을 통해 배우는 브랜드다움, 그리고 인생다움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접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이가 있을까 싶은 배달의 민족의 창업자 김봉진 의장의 기부 소식이었다. 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한다는 소식도 놀라웠지만 그의 기부액이 무려 5천억 원이라는 것 또한 참으로 놀라웠다. 개인적으로는 학연과 지연이 촘촘히 얽혀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고와 전문대 출신인 그의 성공과 기부가 참 대단해보였다. 상속세를 아끼려고 편법을 저지르는 재벌의 기사만 보다가 그의 기사를 보니 대한민국이 바뀌어 가고 있는 건지, 그가 중력을 거스른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배민 창업자 김봉진 재산 절반 이상 기부…5천억원 넘어 [연합뉴스, 2021-02-18]


김 의장의 기부 소식이 매스컴에 알려졌을 때는 공교롭게도 내가 배달의 민족 브랜딩이야기를 다룬 책 '배민다움'을 막 읽어갈때 쯤이었다. 그의 인생이야기와 사업이야기, 그리고 그의 철학을 책으로 막 접했을 시점이라 그의 기부기사가 더 크게 와닿았다.


책 '배민다움'은 한양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마케팅학회 회장을 맡고있는 홍성태 교수가 김봉진 의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엮어낸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뷰를 엮은 책을 참 좋아한다. 인터뷰어의 한 사람을 샅샅히 파고드는 예리한 질문도 좋아하고 내가 알고 싶은 인터뷰이의 생각을 생생히 활자로 느낄 수 있어 그의 철학을 꼭꼭 씹어 소화하는 느낌이 든다.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라 책을 술술 빨리 읽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것은 물론 인간 김봉진의 삶과 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배달의 민족'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다. 디자이너였던 그가 재미로 만들었던 배달의 민족 어플리케이션의 성공부터 우아한 형제들을 키워내기까지의 우여곡절이 인터뷰에 그대로 녹아있다. 비록 요즘 세태를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마케팅으로 종종 눈총을 받긴 하지만 B급감성과 키치함을 전면에 내세운 배달의 민족의 마케팅이 성공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경쾌한 민트색의 키 컬러와 투박하지만 정겨운 BI, 이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배달의 민족 폰트 시리즈는 이제 브랜딩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대중들에게 친숙하다.

최근 대중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던 배달의 민족의 '고마워요 키트'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무래도 브랜딩과 회사에 대한 김봉진 의장의 신념이다.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책에 걸쳐 일관된 이야기를 하고있는것이 좋았고, 또 2016년에 쓰여진 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히 현 트렌드를 짚어내는 것 또한 놀라웠다.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든 매 순간 여러 가지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다. 우선 본인의 이름 석자가 관리해야 할 첫 번째 브랜드다. 나아가 자기가 속한 기업의 브랜드는 물론이고, 가문의 명예나 졸업한 학교의 명성, 조국의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의 가치를 높이려 신경 쓴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일생 동안 하는 일이, 본인과 관련되는 각종 ‘브랜드를 관리하며 사는 것(branding)’이 아닌가 싶다. p.45

   

그는 브랜딩을 마케터의 일로 국한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은 인생에서 '멀티 페르소나'처럼 여러 개의 브랜드를 관리하며 살아간다고 본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하루의 9시간은 내가 속한 회사에 녹아들어 그 브랜드의 일원이 되지만 퇴근 후 노트북을 닫는 순간 주민등록증에 적혀진 내 이름이라는 브랜드를 관리한다. 우리는 어쩌면 숨쉬고 있는 모든 순간들을 브랜딩에 공을 들이며 살고 있는 셈이다.


회사 구성원에게 회사의 미션이나 비전을 내재화(internalize)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외부 브랜딩보다 중요한 것이 내부 브랜딩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성장을 멈추거나 망하는 85%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라는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의 연구 결과처럼, 내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브랜딩은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놀라운 힘을 발한다. 사실 이 책은 회사 회의실 내 책장에서 발견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회사의 C레벨이 이 책을 읽었음을 확신했다. 이 회사에 입사하며 느꼈던 차별점은 면접과정부터 회사의 미션이나 비전을 강조한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다니며 항상 회사가 예민할 만큼 회사의 문화에 공을 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됐다. 나도 모르게 내가 우리 회사의 서비스에 애정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 이런 진심어린 감정은 회사에 위기가 찾아오면 더 빛을 발할 것이 분명하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종종 시간과 돈이 아까워지는 책이 있다. 일관되지 않은 두루뭉술한 처세술로 그야말로 돈을 벌겠다는 목적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독자까지 피로하게 만들고는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입사 후 바로 빌렸지만 입사한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읽게 됐다. 2021년의 트렌드를 파악해보겠다고 산 트렌드코리아에 밀렸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최신 소설에 밀렸다. 왜 이제서야 읽은 걸까 후회한 만큼 내게 좋은 책이었고 문장 하나 하나가 피와 살이 됐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적성을 깨닫게 됐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가끔 회사를 다니며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높은 일의 강도는 둘째다.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내가 쓰는 카피에 독자가 비웃거나 공감하지 못하지는 않을지 매번 조바심이 난다. 답은 '브랜드다움'과 '일관성' 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목적성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인생 또한 하나의 브랜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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