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파도타는법

by 살랑


불행을 이겨내고 싶을 때는 행복하던 때의 사진을 들춘다. 작년 여름 서울 숲에서의 찰나.



올 해는 참 느낌이 좋다. 무엇보다 타이밍이 좋다. 평소같으면 바쁜 이 시기에 절대 잡지 않았을 건강검진이다. 이 시기 마저도 아주 운이 좋다.


건강검진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회사 복지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 건강히 오래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바쁘다 투덜대지만 이렇게 행복하고 안정적이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말그대로 어둡고 긴 20대의 터널을 지나 평화로운 30대의 터널을 진입하고 있다 믿었다.


종합건강검진을 받아본 것이 처음이라 설렜던 마음은 딱 그때까지였다. 어두운 초음파실 TV 스크린에 둥둥 떠있는 동그랗고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딱 그때까지. 요즘 살이빠져 그렇게 굵지도 않은 목에 자그마치 5cm나 되는 결절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니. 그리고 흔히 말하는 악성 종양일지도 모른다니.


게다가 그놈의 조직검사는 왜 마취도 없이 하는 건지. 아픔을 잘 참는 편인데도 저절로 눈물이 났다. 마취 크림이라도 발라주지. 6개월동안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이제야 살만해진 회사는 계속 다닐 수 있는건지, 기껏 몇개월 다니며 모아둔 돈을 수술비로 날려야 하는 건지. 테헤란로 한복판을 배회하며 한참 머리를 굴렸다.

주말에는 과장 없이 18시간을 내내 잠만 잤다. 현실에 대한 회피가 반,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이 반이었다.

주말에도 그놈의 자기계발이 뭐라고 자신을 너무 혹사시켰다. 침대에서 이틀을 그렇게 뒹굴거리니 누적됐던 피로가 풀리고 머리가 맑아졌다.


어쩌면 내게 또 다시 다가올 지 모르는 불행의 물음표를 안고 어느때보다 긴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이상하게 운이 좋을 것 것만 같다. 혹시 내 목에 자라고 있는 그것이 암 덩어리라도, 이제는 불행을 파도탈 수 있는 힘이 생겼음을 스스로 아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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