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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Apr 25. 2021

콜드콜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케팅이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Business To Consumer) 마케팅이 아닌 B2B(Business To Business) 마케팅 필드로 이직하게 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갑'이 아닌 '을'로서 나의 포지션이 대폭 변화했다는 것이다. 


사실 B2C 마케팅에도 갑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B2C의 최종적인 갑은 소비자다. 광고 카피나 프로모션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맞춰야만 고객의 '구매'라는 최종적인 선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마케터가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은 극히 드물뿐만 아니라 규모가 큰 인하우스 마케팅팀의 경우 사실상 광고·홍보 대행사와 계약하며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대부분 클라이언트로서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B2B는 케이스바이케이스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이 강세인 느낌이다. 기업과 기업간의 계약이 주를 이루다 보니 고객사 담당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고 마케팅의 방법 또한 더 전통적인 방법이 아직까지 주류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고객사 담당자와의 관계에서 B2B 마케터는 갑이 되긴 힘들다.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지 7개월, 이제는 아무렇지 않지만 처음에는 도망가고 싶었던 나의 데일리 업무는 바로 콜드콜이다. 


cold-call
1. <물건을 팔기 위해 고객을> 임의로 방문하다
2. (물건을 팔기 위한) 임의적 고객 방문; (생명 보험·투자 신탁 등에서의) 권유 전화


콜드콜, 쉽게 말하면 광고전화. 사실 처음에는 적잖이 불만스러웠다. 채용 공고에도 없었던 업무일 뿐 아니라 내 직무와는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단순히 교육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이 업무를 언제까지 하게 되냐는 나의 물음에 상사는 당연한 듯이 해맑게 대답했다. "앞으로도 매일 해야지!"


처음에는 콜드콜을 진행해야 하는 오후 1시만 되면 어찌나 싫은지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였다. 20대를 아르바이트만 하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텔레마케팅은 늘 기피했었다. 20대 중반 큰맘먹고 찾아간 선거여론조사 TM 알바도 두시간만에 중도포기할 정도였다. 일면식도 없는 수화기 너머 상대에게 받는 무관심을 넘어선 불쾌한 반응을 견디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도 많은 기업이 콜드콜을 진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콜드콜 7개월째,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라고 하면 그건  100% 거짓말일 것이다. 대한민국에 화가 많은 직장인은 많고 이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월요일 오전이나 비 오는날 그들의 표적이 되는 날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무례한 태도에 상처를 받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오히려 그들이 무례하게 굴수록 더 친절한 목소리로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와의 약속이다. 어쩌면 달갑지 않은 태도가 당연할 이름 모를 이의 태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프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또 드는 생각은 어쩌면 '모든 것은 마케팅이다' 라는 인사이트다. 코로나로 대세가 된 디지털마케팅 또한 세련된 마케팅이다. 이 시국 속에서도 오프라인 이벤트를 기획하며 양질의 고객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마케팅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전통적이고 어떻게 보면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콜드콜을 아직도 많은 기업이 진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결국 고객의 마음을 사는 것은 ARS나 챗봇이 아닌 사람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개편 이후 곧 콜드콜을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섭섭하기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더 크지만, 그럼에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건 콜드콜을 해보기 참 잘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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