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 배려심으로 관계를 배려버릴 거야.”
요즘 데이트를 나갈 때마다
이 장면에서 이번인 어떤 반응을 하지?
그 생각부터 먼저 난다.
그는 멋진 걸 정말 잘 찾아낸다.
노을이 천천히 내려앉는 스팟,
사람 발자국도 거의 없는 조용한 산책로,
빛이 물 위에서 금빛으로 부서지는 순간들.
그리고 매번 묻는다.
-여기 진짜 멋지지?
문제는 나는 더 이상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내 감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조금만 덜 반짝여도 그가 바로 알아채니까 부담스러운 거다.
이걸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나 요즘 리액션이 연기 같아.
내가 아무것도 못 느끼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무서워.
친구는 잠시 듣더니 조용히 물었다.
-좋아하는 건 맞지?
나는 바로 손을 내저었다.
-야 그렇게 원론적으로 파지 마라.
그럼 나 무서워져.
좋아해. 좋아하니까 걱정하는 거잖아.
-근데 왜 너가 좋아하는 건 말 안 해?
예쁜 카페에서 여유있게 책 읽고 싶잖아.
무릎 연골 박살 날 때까지 산책하고 싶을 거고
길바닥에 앉아서 맥주 까고
배드민턴도 하고 농구도 하고 싶잖아.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카페도 가고 산책도 하지. 풍경 보는 김에
풍경은 뭐, 둘 다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건… 나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친구는 유리컵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너는 그 배려심으로 관계를 배려버릴 거야.
말이 가볍지 않았다.
내가 반응을 못 해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너무 조용히 숨겨놓은 것이 문제였나보다.
그때 남친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번 주말엔 바다 보러 갈까? 전망대 새로 생겼대!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아… 또 풍경…
친구는 내 표정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말해. 말해야 알아. 그 사람은 널 사랑하니까
자기가 느끼기에 좋은 걸 주고 있는 거야.
근데 넌… 말해야 해.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래. 말해야 한다.
사랑 뒤에 숨겨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말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