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서울주민_남산

“빛도, 바람도, 나도 잘 드나들지 못하는 공간.”

by 전초록

서울에 살고 싶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서울에 산다는 건

응당 가져야 할 어떤 표식처럼 느껴졌다.


지방에서 버스 두 번, 기차 한 번을 갈아타고 올라올 때마다 나는 서울을 하나의 상징처럼 바라봤다.

손 닿을 듯 말 듯한 미래.


결국 5평짜리 원룸을 계약했다.

문을 열면 바로 싱크대 앞이고,

그 싱크대와 침대 사이에 빨래 건조대를 펼치면

그야말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방.


샤워하면 화장실 전체가 젖어버리고,

창문을 열면 건물 벽이 바로 앞이라

빛도, 바람도, 나도 잘 드나들지 못하는 공간.


그런데도 계약서를 들고 나오는 순간

이상하게도 뭔가 이루어낸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제 나도 서울 주민이구나.


이 한 장으로 나는 서울에 ‘존재’할 권리를 얻었다.

서울이 나한테 준 건 고작 5평뿐인데

그걸로도 나는 괜히 기뻤다.


웃기지 않아?

서울에 내가 차지한 면적은 고작 5평인데

그 작은 직사각형 안에

나의 자존심, 꿈, 허영, 조바심, 환상 같은 것들이

다 들어와 버렸다.


나는 알고 있다.
이 도시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는다는 걸.


어쩌면 이것만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서울에 내가 가질 수 있는 공간은 단 5평뿐이지만

지방에서 상상하던 서울의 삶이라는 흐릿한 그림 속에서

나는 드디어 한 조각을 얻게 된 셈이니까.


그 조각이 좁든, 답답하든, 우습든

오늘부터

나는 서울 주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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