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비추천_창덕궁 돌담길

“저는 그분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by 전초록


퇴사를 결심한 뒤로, 나는 은근히 회사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는 중이었다. 인수인계 파일도 일부러 몇 개 빼먹었고, 남은 기간 연락이 오면 그냥 무시해버릴 생각도 했다.


어차피 곧 이곳을 떠나는 사람인데 뭐 어떻겠어. 그런 마음이 조금씩 쌓이면서 태도가 흐릿하게 풀려갔다.


어느 날, 복합기 옆에서 출력물을 기다리는데 사무실 쪽이 조용했다. 대표방 문이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통화하는 목소리만 낮게 흘러나왔다.


-아, 그 직원요.

음…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저는 그분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말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정확하고 날카롭게, 아무 감정도 없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출력물이 무겁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몇 년의 경력이,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그 문장은 어디든 흘러갈 수 있고, 누구든 대상이 될 수 있다.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를 켰을 때, 누락했던 파일 목록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하나씩 다시 찾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짜증 나서 무시하려던 메신저 답장도 천천히 달았다.


이 회사와 오늘이 마지막일지라도,

마지막 말 한 줄만큼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그 말이 내 평판이든,

누가 언젠가 나를 부를 때의 목소리든.


퇴사할 때 모두가 화려하게 나갈 필요는 없다.

그저 조용히, 깔끔하게, 할 일을 마무리하는 것.

세상은 생각보다 좁아서,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다시 엑셀 파일을 열고, 빠진 셀을 채웠다.

작은 기록 하나가 누군가의 ‘반대입니다’를

막아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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