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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ug 12. 2022

당연하다는 편견

세상에 어떠한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웹툰을 보다 내려야 하는 정거장을 지나치진 않았는지 고개를 들었다. '아직 많이 남았군.' 다시 웹툰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옆에 서 있던 교복을 입고 있는 여고생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게 되었다. 친숙함에 이끌려 시선이 멈췄는데, 내가 보고 있던 무협 웹툰을 보고 있었다. '응? 여학생이 무협 웹툰을 본다고?' 순간 사고는 정지되었다.

나노 마신은 못 참지

지극히 성에 대한 편견으로 바라본 차별적 시각이었다. 여학생이니 로맨스와 같은 장르의 콘텐츠를 봐야 한다는. 매 순간을 조심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인지할 새도 없이 떠오른 차별적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성 정체성에 따른 역할 구분은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했지만, 아직은 이해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이를 체득화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상황과 화끈거림의 누차 반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상대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과 같은 혐오의 감정과 구분 짓는 행위는 어떻게 보면 본능적 일 지도 모른다. 과거의 인간은 상대와 나, 적과 우리를 구분함으로써 보다 안전한 공동체를 지킬 수 있었고, 생태계의 많은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지독한 냄새 또는 맹수의 울음소리와 같은 파동으로부터 위험의 신호들을 미리 감지하고 도망가는 것이 생태계에서 포식자가 아닌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현재에도 용인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음은 우리가 법 또는 사회 문화로 제한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쉽게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타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번식의 욕구를 내세우거나, 타인의 소유임에도 갖고 싶다는 욕망에 의해 내 것이 아닌 것을 훔치거나, 내 의지 또는 판단대로 되지 않아 상대에게 언어적 또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등 본능대로 사는 삶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본능대로 사는 삶은 사회를 파괴한다.


이처럼 시대마다 또는 사회마다 지켜야 할 규범들이 존재한다. 현재는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과 편견은 존재해선 안 된다. 이를 잘 지키기 위해서는 잘못된 생각임을 인지하고, 이해하며,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의 핵심은 본능에 따른 이분법적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는 적과 나를 구분하는 과정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현재에 이러한 사고는 사회를 분리시키고, 혐오를 조장하고, 갈등을 양산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사회문제만큼이나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모여 다양한 해결책으로 맞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을 구분하여 각각의 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 삐뚤빼뚤하고 특이한 모양이 될지라도 하나의 원을 크게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건축가도 이과니까 이러한 것들을 쉽게 이해하는구나!


웹툰을 다 보고는 유튜브에서 과학 관련 콘텐츠를 재생했다. 과학자와 건축가가 나와서 화학 기호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두 분 다 이공계열이니 당연히 화학 기호를 잘 이해할 거라는 편견. 아차, 당연한 게 어딨어? 당연하다는 것 자체가 편견임을 다시 깨닫는다. 나도 모르게 작동된 이분법적 구분을 과감히 버린다.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에서 인류는 발전해 왔다. 세상에 어떠한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상황과 화끈거림의 반복, 처음부터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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