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유행이 돌고 돈다지만, 'Y2K' 특유의 감성이 다시 유행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소위 패션의 암흑기로 불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이 유행의 시작 지점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지나갔다고도 볼 수 없는 듯하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서면에 펑퍼짐한 카고바지와 조던 신발, 찢어진 청바지, 아래위로 색을 맞춘 트레이닝 셋업 등 그 당시 유행했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할 만큼 많다. 또한 그들이 다니는 번화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그 당시 락 발라드 음악들, TV 광고나 유튜브와 같이 최근에 소위 '힙'하다는 곳에서 제작된 콘텐츠들에는 'Y2K'의 감성을 흠뻑 담아낸 도트나 레트로 디자인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Y2K' 유행은 왜 지금에서야 다시 돌아왔을까?
먼저 'Y2K'의 정의는 Year 2 K(Kilo, 1000), 즉 '2000년'을 뜻한다. 개인용 컴퓨터가 상용화되고 나서 처음 맞이하게 되는 새 천년(2000년)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호기심, 절망과 희망 등이 뒤섞여있던 시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와 비교해 보면, 그 당시의 컴퓨터 성능은 계산기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계산기 수준이라 하더라도 당시 운영 체제였던 '도스' 내에서 게임이 가능했고, 그때부터는 컴퓨터와 인터넷도 일상생활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개인용 컴퓨터의 상용화로 마치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AI(인공지능) 비서 '자비스'처럼 일상을 혁신적으로 바꿀 존재가 컴퓨터라 여겼던 때였다. 물론 상상과 현실의 괴리는 존재했지만 말이다.
희망이 있으면 절망도 있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은 새 천년이 되는 날에 공학적 오류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존재했었다. 이를테면 컴퓨터에서는 '2000년'이라는 시간을 표기할 수 없다는 아무런 근거 없이 떠돌던 소문처럼 말이다. 물론 지금은 터무니없는 소문을 믿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기술 발전과 인식 전환에 이르렀지만,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전산 오류가 심각할 것을 대비해 은행에서 돈을 찾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처럼 기술 발전에 따른 편리한 세상을 꿈꾸며 갖는 희망의 기대와 기계 오류로 인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생각하는 절망의 공포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결국 희망과 절망의 불편한 동거는 대중들의 기대와 공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주식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사람들의 기대에 편승한 광적 투기 현상은 주식의 폭등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폭등으로 한동안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주식이 공포의 확산과 함께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결국은 사상 최대 하락을 기록한 '닷컴 버블'이 터졌고, 나스닥은 고점대비 약 80%나 하락했다. 세계 경제가 무너지면서 파생되는 사회문제가 다양한 영역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더욱 걱정했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가 발생했고, 그 여파로 우리나라 외환 보유고도 부족해졌다. 우리나라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IMF로부터 돈을 빌려야만 했다.
IMF 사태가 연일 뉴스에 나왔지만, 그때 나는 6살이라서 경제 위기로 인한 부모님의 한숨 섞인 시름을 깊이 헤아리지는 못했다. 다만 하루에 하나씩 새우깡을 사 먹을 수 있도록 주어졌던 500원의 용돈이 당장 끊겼다. 따라서 당시에 유치원 생이었던 나도 우리 집안뿐 아니라 온 동네가 좋은 상황이 아니란 것쯤은 어렴풋하게 추측할 뿐이었다. 이제야 그때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 어른들에게 기대보다는 확실히 공포가 많아 보였다. 그때는 경제 위기와 기술 개발의 불확실성 등으로 사회문제가 연이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더군다나 혼란의 틈을 놓치지 않는 집단도 있었다. 세기말(1999년)을 끝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종말의 시나리오로 점철된 집단 자살과 사이비 종교가 판치던 시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1월 1일은 1999년의 어느 날과도 다르지 않게 새해가 떠올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빠르게 일상을 회복했다. 두려워서 위축되어 있었던 것에 보복이라도 하듯이, 사람들은 반대로 과감해졌다. 그렇게 절망과 혼돈으로부터 파생된 공포의 감성에, 비약적 기술 발전과 혁신에 대한 기대의 감성이 뒤섞였다. 그렇게 'Y2K'만의 상반되면서도 파격적 감성들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초등학생 고학년이었던 나는 비록 직접 돈을 벌지 않았지만, 질풍노도 시기 청소년으로서 그때 유행하는 혼돈의 감성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파도의 정점에 올라탔던 듯하다.
'Y2K'의 감성이 물씬 풍기던 2000년대 초반, 그때는 죽고 못살던 동성친구보다도 이성 친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주머니가 많고 끈이 주렁주렁 치렁거리는 녹색 카고 바지를 밑단을 질질 끌고서 온 동네 먼지를 청소하며 돌아다녔다. 심지어 CD 플레이어가 무거워 헤드폰은 연결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었지만, 폼 때문에 죽고 사는 10대의 나는, 음악이 나오지도 않는 헤드폰을 목에 항상 걸고 다녔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창피함에 고개를 들 수 없지만, 그땐 그게 멋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훌쩍 흘러 다시 희망과 절망이, 기대와 공포가 공존하는 시대가 왔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코로나 19가 처음으로 발생했고, 2020년 초 국내 감염환자가 생겼다. 그 이후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마스크와 손 세정제 대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발생, 전 세계의 물류 대란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전 세계인이 함께 겪는 위기가 지속되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전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국가들 뿐 아니라 심지어 가족과도 단절해야 했다. 사람들은 감염 발생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절망과 공포, 혼돈에 지배당했다. 언젠가는 끝 날 수 있다는 아주 작은 기대와 희망을 간직한 채로.
새 천년에는 컴퓨터와 인터넷, 세계화, 경제 교류 등의 발달에 막연하게 기대하다가 기술의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람들이 혼돈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더욱 진보된 기술에 대한 경험으로 당시보다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사람들은 감염으로 인한 단절의 공포에 더 깊숙이 빠져 들었다. 사람들은 다시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사회를 살아야만 한다. 그래서였을까? 'Y2K'만의 희망과 절망, 기대와 공포가 마구 뒤섞인 감성이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Y2K' 유행이 지금 다시 돌아온 것은 현재가 그때만큼이나 기대와 공포의 혼란에 직면해 있다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추측해 보자면 'Y2K' 특유의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감성은, 현재 우리가 감염병으로 인해 느끼는 절망과 엔데믹으로 향하는 희망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집단의 감성과 직접 연결되는 듯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5월에 엔데믹을 선언했다. 새 천년이 시작될 때 특별한 전산 오류가 없음을 확인하자 사람들이 더욱 파격적으로 문화를 만들어갔던 것처럼 'Y2K'의 파격적 트렌드가 코로나 19 이후에 다시금 주류로 자리 잡았다.
유행이라는 것은 사회적 동조 현상이다. 'Y2K'가 20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지금 시기에 다시금 유행한 것은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Y2K' 유행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한다. 패션의 암흑기였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가 아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위기라고 느낄만한 혼란과 절망의 상황들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