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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Oct 05. 2023

상대를 향한 부러움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복지관 과장님이 내 신발을 보더니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유인 즉, 내 신발이 예쁘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직접 커스텀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자마자 수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팀장님은 옷도 잘 입고, 디자인도 잘하고, 강의도 잘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노래도 잘하고, 도대체 못하는 게 뭐예요? 부산에 있을 사람이 아녀. 서울로 가야지 서울로."

ⓒ Upesh Manoush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나는 쏟아지는 칭찬에 발그레 웃어 보이며, 손사래를 치고서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칭찬을 듣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지만, 계속되는 칭찬 속에 있다는 것은 대처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도 예의는 아닌 데다가, 모든 칭찬을 거부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다. 그렇다고 몇 가지만 골라서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멋쩍은 미소만을 보이고, "아유,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도망친다.


상대를 칭찬한다는 것은 내게 부족한 부분 또는 상태로부터 기인하는 듯하다. 내게 무수한 칭찬을 쏟아 내는 과장님은 자신의 성향과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내가 부럽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말을 논리적으로 하는 것이 어렵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꼼꼼하지 못하다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나는 과장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특정 성향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오히려 감성적인 면이 부족해 과장님이 부러울 때가 있다. 담당 업무마다 다르겠지만, 사회복지사에게는 무릇 공감 능력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현장에서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사회복지사는 아니라, 경청이나 공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을 체계적으로 만들어가는 일에서 주민이나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없으면, 실효성 있는 체계를 기획하기 어렵다.


최근에 내게도 두 명의 부러운 사람이 생겼다. 한 명은 매일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정지우 작가다. 그는 육아와 강연, 문화 평론가로서의 활동, 변호사라는 직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물론 내가 그의 삶을 면밀히 전부 알 수 없으니 이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삶을 빼곡히 채워가면서도 쓰는 사람으로서 매일 자신의 돌아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면, 그의 SNS나 각종 글 쓰기 플랫폼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번은 북토크에 가서 '어떻게 이 모든 것이 가능하냐'라고 정지우 작가에게 물었다. 그는 스케쥴러에 다양한 활동을 기록하면서 우선해야 하는 것들을 정하고, 꼭 할 필요가 없거나 중복되는 일정들을 빼거나 조절한다며 조금은 뻔한 답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쓰는 시간은 꼭 마련한다고 했다. 출퇴근 길의 지하철에서, 늦은 밤 잠을 줄여서, 심지어 아기를 돌보면서도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꼬박 두 시간 이상 집중해서 쓰고도, 다음에 퇴고만 한 시간 이상을 하는데 말이다. 나는 그의 쓰고 성찰하는 능력이 부럽게만 느껴진다.


다른 한 사람은 바로 침착맨이다. 나는 매일 '침착맨' 유튜브를 챙겨보는 데, 평범한 사람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특유의 재치 있는 발상에 끌려 그의 영상을 챙겨본다. 특히 찌질함이나 구두쇠와 같은 자신의 단점들은 다른 사람에게 숨기고 싶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를 생방송에서 터놓고 내보일 만큼 털털하면서도 솔직함이 매력적이다. 그에게 부러운 것은 그의 재치 있는 발상과 솔직함도 있었지만, 현재 그를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이다.

ⓒ  나혼자산다 of MBC. All right reserved.

그가 생방송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밥을 먹거나, 게임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잡담하는 것이 콘텐츠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 년에 그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최근 수십 억이라고 밝혀졌다. 그는 단지 만화를 그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웹툰 작가가 되었고, 첫 결혼은 게임과 했다고 아내 앞에서도 말할 정도로 게임을 좋아한다. 자신을 게임 유튜버라고 소개하지만, 그는 게임에 소질이 없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나도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쓰게 되면서, 쓰는 삶이 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도 얻고 싶다. 물론 사람들이 사랑할 만한 글을 쓰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했던 것은 단지 그들의 현재 모습이 아닌가 싶다. 정지우 작가는 십 년 동안 작가로서, 심지어 학창 시절부터 쓰는 사람으로서 이십 년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들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왔기에, 십 오분이면 에세이 한 편을 뚝딱 쓸 수 있는 현재의 정지우가 되었을 것이다. 하물며 침착맨도 마찬가지다. 웹툰 작가로서의 십 년과 스트리머로서의 십 년을 묵묵히 쌓아왔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콘텐츠 창작자로 현재의 침착맨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노력이나 과거까지 부러워했던 적은 없었다. 단지 그들이 성취한 결과나 현재만을 부러워했다. 미루어보건대 내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오히려 그들의 현재가 아니라 그들이 묵묵히 쌓아온 노력들과 과거의 시간 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나는 한 시간의 초고 쓰기와 두 번 이상의 퇴고를 거쳐야지만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할 수 있다면, 매일 쓰는 사람으로서 십 년을 쌓아가다 보면 나도 십 오분이면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는 내가 하고 싶은 또 재밌다고 느끼는 일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으로 치환되지 않지만, 십 년 이상 묵묵히 쌓아가다 보면 글 쓰기와 그림 그리기, 노래 부르기 등의 창작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아 사랑을 얻어 창작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지 모르겠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꾸준히'와 '묵묵히'인 듯하다. 과장님의 나를 향한 부러움이 정반대 성향에서 출발했듯이, 아마 앞으로 살아가다 보면 숱한 상대의 다양한 부러움을 마주할 것이다. 그 부러움의 순간에 결과만을 부러워하지 않고 과정을 부러워하다 보면, 부러움은 내게 곧 현실이 될 것이다. 부러움은 내게 충분히 가능한 그 무엇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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