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기간 동안, 나는 유령의 집에 사는 것 같았다. 내가 사는 곳은 원룸촌에 위치해 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강아지와 산책하는 거리에, 세어보지 않았지만 빌라만 수십 채가 족히 넘는 듯하다. 특히 신축 빌라들이 많은 것이 다른 원룸촌과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룸촌이 으레 그렇듯 연휴가 아닌 평소에는 청년들이 자주 보인다. 산책하다 마주친 그들의 모습은 대게 10L짜리 종량제 봉투에 동네 마트에서 장 본 것을 넣어서 집으로 향하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거나, 잠옷 차림으로 잠깐 편의점에 나온 모습이다. 그런데 연휴가 되자 그들 모두가 사라졌다.
나는 담배를 태워본 적이 없어서 인지 모르지만, 담배 냄새에 꽤 예민한 편이다. 최근에 담배 냄새가 화장실을 타고 올라왔다. 특히 화장실은 창문이 작아 냄새가 잘 안 빠지는데,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아래층에서 담배 태웠음을 직감한다. 그 순간 관리인한테 전화를 할까, 창 밖에다가 집에서는 담배 태우지 말라고 크게 소리칠까,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몇 층인지 확인해 둘까 생각한다. 나는 고민하다 소심하게 속으로 욕하고 참는다. 간접흡연도 폐암을 유발하지만, 스트레스를 상시적으로 받게 하는 환경 또한 암을 유발한다고 했다. 나는 의도치 않게 여러모로 건강을 해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담배 냄새마저 연휴와 함께 귀신 같이 사라졌다.
평소라면 저녁에는 창문을 닫는다. 왜냐하면 적어도 집에서 쉬고 있을 때의 나는 몸에 열이 많아서 옷을 거의 입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한 겨울에도 속옷 한 장만 달랑 걸치고, 모든 생활을 한다. 나는 꼭대기 층에 살고 있어서, 그나마 염려가 덜하지만 길 건너 앞 집에 불이라도 켜져 있는 날에는 창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간혹 앞 집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얼른 숨고, 부끄러움에 창문을 후다닥 닫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연휴에는 창문을 닫지 않아도 괜찮았다. 추석을 맞아 모두가 사라지고, 내 헐벗은 몸이 누구에게도 드러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평소에 빌라에 함께 사는 이웃들과 살갑게 지냈던 것은 아니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엘리베이터조차 다른 사람과 함께 타는 일이 잘 없었다. 나는 꼭대기 층이라서 항상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다 보면, 중간에 문이 열리고 아무도 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엘리베이터가 일층에 도착하면, 앞사람이 나가는 뒷모습과 닫히고 있는 현관의 자동문을 본 적이 꽤 많았었다. 뿐만 아니라 반대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보면, 나와 함께 타고 올라가기보다 걸어 올라가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자신의 집이 타인에게 노출되는 것이 싫었거나 나와 마주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겠다고 감히 추측해 본다. 내가 남자임에도 그리 위협감을 주는 신체 사이즈는 아닌데 말이다.
이처럼 애초에 가까이 지내는 것을 떠나, 인사조차도 하지 않고 지낸다. 사실상 '연휴가 아니었을 때도 유령의 집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간혹 배달음식이 다른 집 앞에 놓여있는 것은 본 적 있지만, 그것을 들고 들어가는 것은 본 적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다음에 집을 나설 때면 음식은 귀신 같이 사라지고 없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누가 내 앞 집 혹은 옆 집에 사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 집 현관문 앞에 택배 박스가 놓였다 사라지거나, 비 오는 날에 젖은 우산이 나와있는 것을 보고 그저 추측할 뿐이다.
독립하기 전에 살았던 본가도 빌라였다. 하지만 그곳에 살 때는 이웃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인사를 하다 보면, 간혹 가벼운 근황도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다세대 주택의 옆집 할머니에게 반찬을 가져다줬던 것만큼이나 가깝게 관계하며 지내지는 않아도 꽤 살갑게 지냈다. 최근에는 아버지랑 밥을 먹으려고 집에 갔었는데, 그 과묵한 아버지조차 옆 집 아들이 새 차를 샀다는 사실을 내게 전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이나 빌라에 각자 따로 살았지만, 이웃으로 살았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함께 살아갔다.
하지만 나는 지금 유령의 집에 살고 있다. 이웃을 만나면 인사는커녕 서로 피해 가기 바쁘고, 엘리베이터조차 함께 타지 않는다. 한 층에 여섯 가구가 살고 있지만, 그 누구도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한다. 이웃과 함께 살고 있지만, 나는 그 누구와도 함께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사람이지만, 이웃들에게만큼은 유령과 다름없을 것이다.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유령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발자국 소리를 내니까 말이다.
본가와 지금 집의 다른 점은 구축과 신축이라는 건물의 연식과 주택 밀집지역과 원룸촌이라는 지역적 특성, 대체로 방이 세 개 있는 가족 단위 집이 많은 것과 원룸의 특성상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많은 것 정도다. 아마 '묻지 마 범죄'를 통해 다른 사람이 내게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졌고, 코로나19를 겪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 두기가 오히려 편해졌고, 기술 발달로 초연결 세계에서 살아가며 집이라는 휴식 공간만큼은 스스로를 격리하기 원하는 심리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본가와 지금 집의 차이 중 가장 큰 것은 가족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하고 아기가 있었다면, 사는 공간이 더 안전하길 바랄 것 같다.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아프리카의 격언처럼,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주변의 이웃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또한 아이가 성장하며 배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원룸촌 살고 있는 모든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서 길러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기가 없어도, 스스로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관계하며 살아가야 한다.
추석 연휴라서 빌라의 이웃들이 사라지자, 유령의 집에 사는 것처럼 느꼈던 것은 내 착각이었다. 사라진 것은 단지 층간 소음과 간접흡연, 주차 부족 문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침 정도였다. 나는 항상 유령의 집에 살고 있다. 나는 독립하면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떡 돌리면서 이웃들에게 인사하는 것이었는데, 이사 온 지가 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늦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바구니와 작은 과자들, 오며 가며 마주쳤을 때 인사정도는 하면서 지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쪽지를 적어 넣어보려 한다. 이웃과 관계하며 지내면서, 더 이상은 유령의 집에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