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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Oct 03. 2023

죄책감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요.

추석 연휴를 보내는 가장 완벽한 방법

나는 기나긴 추석 연휴를 보내는 완벽한 방법을 알고 있다. 사실 완벽이라기보다는 효율적인 방법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 방법은 바로, 항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추수는 관계가 없어진 현대인들에게 추석은 곧 연휴에 불과하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가령 타향살이를 하면서 가족을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족을 보러 갈 것이고, 쉼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쉼을, 오히려 대목이라 더 바쁘게 일상을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결핍에 대한 충전인 셈이다.

ⓒ Will Porada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결핍을 충전하다 보면, 숱한 유혹들이 이를 방해한다. 방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사람이란 본데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하게 죄책감을 활용한다면, 유혹들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읽고 쓰는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넷플릭스 신규 콘텐츠인 '원피스 실사화'는 유혹에 해당한다. 이 유혹으로 인해 갈등할 때, 나는 죄책감을 활용한다.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면 대부분의 유혹에서 이길 수 있다. 먼저 내게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필요는 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므로 걸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읽고 쓰는 것도,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닐 수 있다. 다음은 평소에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한다. 넷플릭스는 밥을 먹으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읽고 쓰는 것은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걸러내지 못하면, 마지막으로 목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해야만 하는 것인데 하지 않는 것인가?'

ⓒ Daniel Cheung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내게 읽고 쓰는 것은 해야만 하는 것, 즉 목표다. 하지만 내게 넷플릭스를 보는 것은 단지 재미를 느끼거나 하고 싶은 것, 해도 안 해도 무방한 것이다. 단순한 유희에 가깝다. 다만 글감을 얻기 위한 콘텐츠 시청이라면, 다시금 목표가 된다. 이처럼 몇 단계를 거치다 보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을 실행하고, 그럼에도 실행하지 않고는 의지의 문제로 넘어간다. 이렇게나 명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이 피곤하다거나 놀고 싶다는 핑계를 댈 수 있다. 사람의 의지에는 강제성이 없어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해야 한다.


'죄책감'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잘못이라고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꽤나 효과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들을 지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죄책감을 체화할 수가 있다.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성취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특히 죄책감을 느꼈을 때,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간혹 죄책감을 느끼는 단계에서 멈춤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여지없이 자괴감으로 이어진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정 말이다.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죄책감을 도구로 삼아 행동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이를 루틴으로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긴 연휴를 맞이하며 가장 애썼던 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다.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샤워를 한다. 오전의 목표를 달성하고, 점심을 먹는다. 오후의 목표를 달성하고, 저녁을 먹는다. 집안일을 하고 강아지와 저녁 산책 후, 자기 전까지의 목표를 달성한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도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 종종 산책하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같은 길에서 마주할 때면, 항상 정확한 시간에 산책했던 칸트가 된 기분은 덤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 Daniel Cheung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루틴이란 그런 것이다. 매일을 일정한 신체 리듬으로 산다. 마치 기계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내게 도대체 언제 쉬냐고 묻는다. 나는 '쉼이라는 것이 필요치 않아요. 내가 부여한 목표들을 달성하고, 성취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만족감들이 다음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쉼이되요. 목표 그 자체가 내가 원하는 삶이기에 제게 쉼은 꼭 필요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목표로 삼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것이 재밌기도 하다.


연휴라고 해서 늦게 일어나거나, '하루 정도는 혹은 반나절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행동하지 않거나, 죄책감에서 머물러 스스로를 채찍 치는 것에서 그치면 루틴은 깨진다. 한 번 깨진 루틴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두 배로 쉽지 않다. 한 번 유혹의 달콤함을 맛보면, 그것은 마치 늪과 같아서 스스로 헤어 나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루틴은 목표로 삼았던 것들을 성취하도록 하고, 작은 성취의 경험들은 자신감을 갖도록 하고,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진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것은 연휴라도 지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재미없는 무미건조한 삶, 인간성을 상실한 삶, 자신 외에는 돌보지 않는 삶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의 기준은 다르다. 오히려 내게는 성취의 반복으로 재미와 자신감도 함께하는 삶, 초인적 삶, 자신에 대해 깊이 알아가려 노력하는 삶이다. 내가 항시 느끼는 죄책감의 원인은 범죄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다. 다만 내 삶을 기준으로 봤을 때, 내 삶을 방임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는 죄가 된다. 죄책감과 행복은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내 삶을 방임하지 않기 위해, 나아가 행복하기 위해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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