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싫어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왜냐하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들떠있는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있는 복지관 건물도 온통 크리스마스에 점령당했다. 층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어 있고, 반짝이는 색전등은 덩굴나무처럼 벽에 붙어 있고, 곳곳에는 "MERRY CHRISTMAS"라고 쓰인 장식들이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덕지덕지 놓여 있다.
해당 시설이 종교 관련된 건물도 아닌데, 온 건물이 리모델링 수준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 특히 복지관 로비에서 환경 인식 개선을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 병뚜껑과 아이스 팩을 수거하는 함 옆에, 일회용품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볼 때면 '아이러니'라는 단어를 이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다. 심지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의 자발적 의사로 설치된 것이 아닐 것만 같아서 그 쓸쓸함이 겨울의 날씨와 잘 어우러져 느껴지기까지 한다.
조사 기관이나 시기에 따라 비율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대부분의 조사에서 비종교인의 수가 절반을 넘는 것에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거리에는 캐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상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할인을 하고, 연인 혹은 가족들과 선물을 나눈다. 이 시기만 되면 사람들이 개종을 하고, 신앙심이 솟구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이해가 되어야지만 행동에 옮기는 내 성격상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크리스마스가 예수 탄생일이 아니라던가, 산타는 붉은 옷을 입은 배 나온 할아버지가 아니라던가, 루돌프는 심지어 동화 속 존재임을 알기에 내게는 도무지 즐길거리가 없다. 모든 것이 허구이며, 잘 기획된 마케팅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산타가 실제로 선물을 배달하려면 순록 41만 2천 마리가 끄는 썰매를 타고 일초당 1,050Km를 달려, 3억 7800만 명의 어린이에게 32만 톤의 선물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추론 정도만이 유일한 즐길거리다.
조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매일 받아보는 뉴스레터에서 질문을 하나 받았다. '산타, 자녀에게 있다고 말해야 할까? 없다고 말해야 할까?'. 나는 며칠 후면 첫 돌을 맞이하는 조카를 대입해서 생각해 봤다. 조카가 산타와 크리스마스를 이해할 정도로 자라면, 곧바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던 것은 우문현답이었다. 산타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아이가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느닷없이 장난처럼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면, 아이는 어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산타가 있다고 믿는 것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정 발달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산타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에서 '역 추론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산타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요?'와 같은 기초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산타가 어떻게 모두 알 수 있어요?'와 같이 능력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허점을 스스로 찾는다는 것이다.
나는 조카가 '크리스마스'라는 것에 선호 혹은 가치 판단을 내리기 전에, 부정적 선입견을 심어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 그간의 내 행동을 미루어보면, 긍정과 상상의 이야기보다는 사실 나열을 기반으로 하는 부정의 논리를 전했을 것이 분명하다. 조카는 오히려 크리스마스의 함께 즐기는 축제 분위기와 부모에게 선물 받는 것을 1년 내내 기대하고 즐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만약 그도 나처럼 사실이나 직관적 이해만을 선호한다고 행동한다면 모르겠지만, 이러한 삶이 녹록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다. 때로는 논리적인 이성보다는 비논리적일지라도 몰입한 순간의 감정을 진실되게 느끼는 것이 필요한 때도 있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더욱 강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무엇이 우열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처럼 편중되어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내가 직관적으로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보다, 때로는 타인을 대입해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 보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인 듯하다. 특히 MBTI나 심리 테스트 같이 스스로의 성향을 파악하기 쉬운 현재의 환경에서는 이미 가진 내 성향을 강화해 나갈 확률이 높다. 스스로를 알고 사랑하는 것도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내게 부족한 부분을 메꿔나가는 것 또한 삶에서 필요한 과정이다. 크리스마스를 죽도록 싫어하지만, 조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것이 내 삶에도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