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모든 것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우리네 삶과 같다. 우리 삶 모든 순간과 영역에는 항상 복지가 존재한다. 이를 테면 시간 순으로는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영역으로는 의료 복지, 교육 복지, 군 사회복지, 기업의 사회복지, 여성 복지, 가족 복지 등 이루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다. 이쯤 되면은 명사 뒤에 ‘복지’라는 단어만 붙여도 그 의미가 어색하지 않다. 이처럼 내 삶의 모든 순간과 영역에 복지가 존재하고, 복지가 존재하는 곳에 사회복지사들이 실재한다. 우리네 삶에도 수많은 형태의 삶이 있듯이 말이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우리네 삶과 같다고 생각했던 첫 번째 이유는 배움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태어나 몸을 뒤집고, 무언가를 붙잡고 일어서고, 혼자 걷기 시작한다. 행동이 복잡해지면서부터 주변 사람의 반응을 통해 내 행동이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인지를 배운다. 학령기에는 국어, 영어, 수학을 비롯한 기초 공부를 통해 삶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청/장년기에는 직업 훈련을 하고, 은퇴 한 이후의 노년기마저 세상의 변화에 맞춰 배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제는 일상이 된 키오스크처럼 말이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지 못한다. 2020년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모든 사람의 삶을 통째로 바꿨고, 당시 대부분 사회복지 서비스는 대면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의 접촉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회복지사는 비대면 서비스로 전환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화상회의를 통해 주민들과 관계망을 끊기지 않게끔 하고, 필수 돌봄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아서 계속 변화를 거듭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랑의 매’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니며, 단지 남의 가정사에 속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폭력은 용인되지 않는다. 또한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폭력을 목격하는 모든 사람이 신고 의무자가 된다. 이처럼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사회복지 윤리와 인권, 정책과 법, 트렌드 등을 배우고 서비스의 기획부터 전달 과정에 적용해야 한다. 또한 삶의 생애주기처럼 현장 전문가, 중간 관리자로 경험을 쌓을수록 배워야 하는 실천 기술들도 달라진다. 배움을 멈춘다면 더 이상 주민들의 삶에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네 삶처럼 불확실성이 높다. 쉽게 말하자면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숱한 상장과 칭찬을 받으며, 나는 특별한 존재라고 느낀다. 현재처럼만 지속한다면 나는 미래에 대기업 임직원, 인플루언서, 스포츠 스타 등이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때론 자라면서 몸이 다칠 수도 있고, 생각한 것만큼 내가 특별한 재능이 없을 수도 있고, 개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계획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로 일하던 때였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며 헌혈하는 사람이 급감했다. 혈액 보유량은 '안정' 단계에서 평균 5일분을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 부산의 혈액 보유량이 2일분 미만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 헌혈의 특성은 단체 헌혈이 많은데, 학교 비대면 수업 전환 및 감염 우려 등이 원인이었다. 나는 곧바로 부산의 공기업, 민간기업, 재단 등과 함께 직장인 단체 헌혈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프로그램 결과로 혈액 보유량이 3.4일로 상승했다. 하지만 진행 과정의 이야기를 하자면, 사전 신청을 했지만 전날에 술을 마셔서 헌혈이 갑작스레 불가한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체중 미달로, 또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지침으로 인해 집합 인원 제한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회복지사인 나는 계획한 대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역 환경 분석을 바탕으로 사회변화의 필요성과 바라는 변화의 목표를 정한다. 계획은 완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의 일은 실행 단계에서 변경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의 일은 다른 일과 달리, 계획대로 투입을 넣어도 계획한 것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최대한 변수를 통제하려 노력하지만, 사람이라는 대상은 불확실성이 높고 통제 불가능한 변수다.
세 번째 이유는 수많은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나는 '사회복지사' 하나로만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함께 사는 강아지의 보호자로서,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바라는 사회복지사로서, 30대 초반의 남자로서, 부산의 시민으로서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각각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에 적합한 역할을 수행한다. 나는 한 명의 개인으로도 살아가지만, 다양한 정체성과 부여된 책무를 동시에 지닌 채 살아간다.
사회복지사 또한 수많은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를 테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디자이너로서, 프로그램의 예산 마련을 위한 모금가로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실천가로서, 사회 변화를 확산하려 노력하는 스피커로써, 때론 누군가의 권익을 지켜내기 위한 옹호자로서 등의 다양한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며, 역할을 수행할 때가 많다. 사실 사회복지사의 일에서 이것은 구조적 문제도 함께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형태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각각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사회복지 예산은 여유롭지 않다. 따라서 한 명의 사회복지사는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 비가 많이 오면 노후화된 시설에 물이 새는 바람에 직원들이 당직을 서며 옥상의 물을 빼내는 펌프를 돌려야 하고,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도 행사 레크리에이션 MC 정도는 볼 줄 알아야 하며, 파워포인트조차 익숙하지 않지만 기관 홍보 영상쯤은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사회복지사는 그렇게 소진되며, 적당히를 배운다. 이는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서비스 전달 체계에 결함을 드러낸다.
네 번째 이유는 우리네 삶처럼 뚜렷한 정답이 없다. 모두가 정답이라 여기는 성공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돈 많이 주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주말에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는 것이 삶에서 정답일 수 있다. 각자의 삶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서 단 하나로 정형화 된 정답은 우리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의 일은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더군다나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들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따라서 개인이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지원하되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단 하나의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는 자기 결정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해치거나 타인의 생명에 지대한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아니면, 그를 둘러싼 환경이나 선택으로 인한 예상 결과 등을 안내하며 함께 삶을 그려나가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일이다.
실제로도 삶에는 정답이 없지만,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사회복지사는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 밀가루 반죽을 굽고, 초콜릿을 발라서 빼빼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회복지사는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밀가루 반죽에 초코라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치즈, 딸기, 생크림 등의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주고, 선택에 따른 예상 결과를 안내해 주는 사람이다. 그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람이며, 존엄한 존재로서 타인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시행착오를 함께 겪는 사람이다. 즉 사회복지사의 일은 명확한 결과나 정답을 도출하기보다 과정을 함께 견디는 일에 가깝다.
이처럼 사회복지사의 일은 우리네 삶과 같다. 따라서 사회복지사의 일을 우리네 삶에서 명확히 분리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이 속한 환경을 이해하고, 사람이란 존재가 불확실하기에 함께 시행착오를 겪고, 모두가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가도록 삶의 모든 곳에 실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하는 일이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위한 일인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주민들의 삶을 준거로 둔다. 즉시 명확해진다. 이렇듯 시행착오를 함께 겪으며 고민하는 사회복지사의 일도, 우리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