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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pr 18. 2024

장애를 마주하면서

학생으로서 장애를

내가 처음 장애인을 마주했던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같은 반에 학생이던 그는 청각장애인이었다. 보청기를 끼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들릴 것이라 어림짐작했던 것이 내 노력의 전부였다. 그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할 때가 있지만, 그리 자주는 아니라 큰 불편은 없었다. 문제는 그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었다. 모든 청각장애인의 발음이 부정확하다거나 아예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정확히 듣지 못하니까 발음이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그도 발음이 부정확했다.


소리를 끄고 자막도 없이 외국 영화를 본다고 가정하면 이해가 쉽다. '배우의 입 모양만으로도 발음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의 발음을 묘사해 본다면 모든 말에 영어 'r' 발음이 겹쳐 있는 듯했다. 나는 지금은 욕을 전혀 하지 않지만,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친구들과 일상 대화에 욕이 많았다. 그때 '빠큐(Fuck you의 된 발음)'라는 욕이 동네에서 유행했다. 친구들끼리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며, 빠큐를 날렸다. 그에게도 같은 장난을 했다. 그의 행동은 우리와 같지만, 돌아온 말은 "빠잉"이었다.

ⓒ Dollar Gill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그 뒤로 그의 별명은 '빠잉'이 되었고, 욕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는 그를 '빠잉'이라고 놀렸다. 서로 장난을 치다 그가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지금 기억하는 것은 웃으며 '빠잉'을 외치던 그의 모습이다. 나는 키가 제일 작아서 친구는 나를 '땅콩'이라 불렀다. 우리는 서로 놀림을 주고받았다. 그 역시 가만히 참고 있지만은 않는 성격이라 일방적인 폭력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고, 상대의 아픔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가히 폭력적이었음에 의심이 없다.


중학생일 때도, 같은 반에 장애인이 있었다. 당시에 그녀가 어떠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아마 지적장애나 경계선 지능이었을 듯하다. 그녀는 말하는 것이 다소 느리고, 의사 표현에 어려움을 겪고, 단번에 이해하지 못해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볼 때면, 대부분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다른 중복 장애가 있거나, 높은 불안도에 따른 몸의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녀를 생각해 보면, 그녀도 다른 여학생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알고 있지만 혼자 몰래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고,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며 예쁘게 보이고 싶어 했고, 별 것 아닌 일상의 대화에 해맑게 웃던 그녀였다. 물론 나도 장애가 있는 그녀를 놀렸다. 개구쟁이였던 나는 그녀만 놀린 것이 아님에도, 다른 친구를 놀렸던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를 놀렸던 기억만큼은 유독 선명하게 남아있다.


비가 올 때는 학교 건물 안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그때 구석 진 곳에 있던 특수반 교실이 기억난다. 조용했고, 음침했고, 우리 반 교실과 같은 크기지만 책상이 몇 개 없었다. 학생도 몇 명 없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창문에 쇠창살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특수반 안에 숨을까?'를 고민하다가 다른 곳에 숨었다. 나는 특수반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성인이 되었다. 나는 특수반에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알고 지내지 못했다. 그곳은 학생 때도, 사회복지사인 지금 현재도, 굳이 찾아가지 않고서는 갈 이유가 없는 곳이다.


사회인으로서 장애를

그러나 잊고 지내던 특수반의 기억은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장애 아동 학대 사건으로 인해 다시 떠올랐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논하기에 앞서 장애 아동의 교육 권리와 돌봄에 공백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다. 장애의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분리 교육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통합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오로지 장애가 있음을 기준으로 분리 교육이 결정된다면, 내가 친구로 생각하던 그와 그녀는 내 기억에서 없었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특수반의 '누군가'였을 것이다. 혹은 특수반의 존재조차 알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내가 그들과 주고받았던 상호 작용들이 옳지 않았고 부적절했음은, 오히려 분리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할 근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리 교육은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장애인에게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게 하고,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인을 존엄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게 한다. 계속 분리된 채로 살아간다면 다름에 대한 차별의 감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차별은 혐오를 낳는다.


가령 장애를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각자도생으로 내몰았을 때, 내가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다면 사회나 주변인으로부터의 혐오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의료 기술의 발달로 사람은 유래 없이 오래 살게 되었다. 이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거의 모두가 장애를 경험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중증질환이나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혐오의 대상이 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를 기본으로 놓고 사회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가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것이 기본이다.

ⓒ Ioana Casapu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장애'는 다수의 관점에서 바라본 폭력적인 기준이다. 예를 들어서 외눈박이 마을에 사는 두눈박이는 장애로 여겨진다. 다수가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님에도, 현재의 우리 사회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차별하고, 혐오한다. 이를테면 두 다리로 이용 가능한 계단을 만들고,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약자 혹은 장애인으로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유모차를 이용하는 보호자도 사회로부터 배제된다. 반면 다수가 옳지 않았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천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애플의 창립자 스티븐 잡스가 그렇다.


정상성 오류는 여기에 있다. 철학자 '마사 바스너움'에 따르면 정상의 반대말은 비정상이 아니다. 정상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것에 더 가깝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비정상으로 낙인찍으면서 혐오하고, 자신은 정상이라는 틀 안에 있음을 안도한다. 그들과 자신을 분리함으로써,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느낀다. 이는 최근의 화두인 능력주의와도 결이 맞닿아 있다. 선천적 장애도, 수려한 외모나 빼어난 능력도, 부자로 태어나는 것도 내 선택이 아니다. 또한 인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과물도 아니다. 그저 주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장애라는 것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사회복지사로서 장애를

나는 복지관으로 출근한다. 복지관에 장애인 주간보호센터가 있어 화장실에서 장애인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강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화장실에 들어가면, 매번 화장실의 대변 칸을 모두 순서대로 열었다 닫는다. 그다음 바지를 종아리까지 내리고 소변을 본다. 나는 혹시 밖에서 보일까 싶어 문을 살며시 닫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바지를 입고 문을 연다. 그리고 나서야 항상 이용하는 소변기 앞으로 가서 바지를 내리고 나서 소변을 본다.


문 닫힘에 대한 강박이 그에게는 불안 요소였을 것이다.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의 담당자에게 이를 전달하고, 빠르게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이를테면 문을 열고 소변을 보더라도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도록 가림막을 설치하거나, 커튼을 다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평생을 사회와 분리되어 살 수 없기 때문에, 사회화 연습으로써 문을 닫고 소변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 생각에는 통합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서로 배워야 한다.


'장애인 차별 금지'를 책으로 배우는 것에 한계가 있다. 지식으로 배우는 것에 감정 이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함께 살아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신혼부부가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평생을 다른 방식으로 살다가 양보와 합의를 통해 비로소 가족이 된다. 서로를 이해하고 조절하며 맞추고 살아가듯이,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 될 것을 가정한다면, 함께 사는 것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필연적 이유가 된다. 내가 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과 화장실을 사용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던 것처럼 말이다. 살 부딪히며 사는 가족 간에 갈등은 언제나 상수다. 갈등을 피해서는 그 무엇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All right reserved.

우리나라 장애 인구 비율은 5% 정도다. 하지만 장애인복지시설을 오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매일의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숨어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님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들의 모든 삶을 특수반과 사회복지시설, 집 안으로 격리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음을 안다면 더욱 그렇다. 장애와 정상의 기준을 사회가 정의하듯, 그들을 배제한 것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윤리적 기준을 떠나서 우리가 좋아하는 돈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격리하거나 분리만 강조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평생 도움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대가로 사회복지시설의 운영과 돌봄 인력의 인건비 등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치료비, 생활에 필요한 비용, 장애 연금 등의 지원도 필요하다. 그들을 격리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닌 이유다.


무조건 장애인에게 노동을 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노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별하거나 이상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비장애인과 같은 조건일 뿐이다. 장애의 유형이나 중증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술의 발달로 활동보조기구를 활용하면 그들도 충분히 일할 수 있다. 다만 아직도 장애인의 이동은 자유롭지 못하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생존권에 대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자립할 수 있는 환경 변화가 선제적으로 필요하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그녀를 횡단보도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화장도 하고, 핸드백을 메고, 옷도 직장인처럼 입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나의 행동이 떠올라서 부끄러움을 느꼈고,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의 단단한 모습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당연히 나는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이미 그녀는 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았다. 이번 장애 아동 학대 사건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장애인 분리와 격리만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내적으로 마음이 고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분리만이 정답이 아님을, 당당하게 삶으로서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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