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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Feb 22. 2024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처절한 생존 투쟁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강아지도 놀라서 짖었고, 그때 나는 잠에서 깬 것 같다. 잠이 깼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고, 다시 ‘펑’하는 소리에 잠이 확실히 깼다. 이번에도 '잘못 들었겠지' 생각하고, 다시 자려고 했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타는 냄새가 났다. 곧바로 일어나 냄새 근원을 찾아 나섰다. TV 뒤 콘센트에서 나는 냄새임이 확실했다. 콘센트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전자제품이 작동하지 않았다. 즉시 두꺼비 집(분전함)을 확인해 보니, 여러 개 중 하나가 내려가 있었다.


영화는 럭비부였던 주인공과 친구들이 우루과이에서 칠레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서 시작한다. 비행기 내부는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승무원은 승객과 카드놀이를 하고 있으며, 친구들은 럭비공을 던지고 받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갑작스레 난기류를 만나서 기체가 많이 흔들리지만,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면, 그 상황에서 한 명은 장난으로 안내 방송까지 할 정도니 말이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기체 흔들림으로 잘못되었음을 감지한 승객들이 겨우 자리에 앉을 때쯤 비행기는 안데스 산맥에 부딪히며 추락한다.

ⓒ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충돌로 인해 비행기 꼬리 부분과 몇 사람은 함께 날아간다. 그들은 설원의 한가운데 찢어져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비행기에서 정신을 차렸다. 비행기가 절단된 채로 추락한 것 치고는 심한 부상을 당한 사람은 없었지만, 문제는 극한의 추위였다. 누구도 설원에서의 생활을 상상하지 못했으니, 두꺼운 옷을 챙겼을 리 없다. 그들은 수화물에서 옷을 꺼내 겹겹이 입고, 열원이랄 것도 없이 서로의 체온만으로 견딜 수밖에 없었다.


나는 콘센트에 불이 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내려간 누전 차단기를 다시 올렸다. 그러나 올리자마자 곧바로 내려갔다. 하필이면 온수매트가 연결되어 있던 콘센트에 스파크가 일었던 터라, 나는 어쩔 수 없이 강아지를 끌어안고 밤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새벽 3시 30분은 수리 기사를 부르기에도, 전기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전등을 켜고 직접 수리를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해가 뜨기 전까지 적어도 4시간 정도는 추위를 느끼며 떨어야만 했다. 나는 추위라는 고통을 잊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잠들 필요가 있었다.


반면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어떻게든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은 잠들면 체온이 떨어진다. 사람 말고 열을 발산하는 존재가 없으니, 안데스 설원에서의 잠은 죽음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더군다나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대낮에도 녹지 않는 눈 밖에 없다. 그들은 살기 위해 눈을 먹고,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죽은 친구들의 사체를 먹는다. 심지어 눈보라로 인해 비행기가 눈에 파묻히기까지 한다. 수많은 고난 끝에 비행기가 떨어진 지 72일째 되는 날, 45명 중 29명이 사망하고 16명이 구조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하필이면 북극 한파가 점령한 밤이었다. 나는 혹시 불이라도 날까 봐, 보일러조차 켜지 못하고 선잠으로 밤을 지새웠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으니까 몸에 힘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결근의 사유는 되지 않기에 출근 준비를 하던 도중, 뉴스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흘러나왔다. 미국에서 북극 한파로 인해 80여 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미국 동부의 한 지역은 영하 35.6도, 체감 온도는 그보다 훨씬 낮은 영하 56도까지 떨어졌다. 안데스 설원과 마찬가지로 눈보라가 휘몰아쳤고, 전기 공급이 끊겨 3일 밤을 추위에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밤새도록 추위에 떨었기에 미국의 한파로 인해 고통받았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위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미국까지 갈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4년 1월 1일부터 21까지 누적 한랜질환자 수는 237명, 추정 사망자는 7명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한랭질환자 67명(28.3%)의 질환 발생 장소는 실내였다. '부익부 빈익빈'은 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기온마저도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한다. '날씨는 누구에게나 같은 조건인데 무슨 소리냐?'라고 할 수 있다.

ⓒ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하지만 외풍이 심한 집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집 안에서도 숨을 쉬면, 입김이 나온다. 오히려 집 안보다도 밖이 더 따뜻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아마 집 안에서는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고 앉아 있거나 누워있기에 더욱 춥다고 느낄 것이다. 악순환이다. 추위가 움직임을 제한하고, 움직이지 않으니 체온이 급히 떨어진다. 심지어 고령으로 집에서 TV 보는 것이 일상인 사람에게는 한랭질환의 가능성이 더 높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이나 내가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었던 것처럼 체온을 나눌 수 없는 고립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서는 한랭질환도 가난과 고립의 질병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가 부익부 빈익빈인 이유가 여기 있다. 겨울철 이상기온을 대비할 수 있는 집 상태부터 온열기구를 가동할 수 있는 경제 여력, 외부 활동이 가능한 건강 상태와 사회적 고립 여부도 누군가에게는 미리 대비하기 힘든 것일 수 있다. 나에게는 단 하룻밤의 악몽과 같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매일이 안데스 설원의 생존 투쟁일 수 있는 것이다.


마땅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랭질환 가능성이 있는 주민들을 조사해서 집수리 서비스, 보일러나 온열 전기장판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공요금 감면, 고독하게 삶이 방치되지 않도록 사회 활동 프로그램, 이웃의 서로 돌봄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복지 시스템이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같은 거대한 사회의 문제를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면, 이곳도 안데스 설원이 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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