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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r 25. 2024

《삼체》예원제는 그저 '빌런'이었을까?

"당신이 뭔데 인류를 대신해서 그런 결정을 해요?". 신세대 물리학자 '진 청'은 구세대 물리학자 '예원제'에게 묻는다. 예원제는 자신이 신세대였을 때, 절망스러운 현실을 직접 경험했다. 이를테면 문화 대혁명 시기 청년 혁명가들의 구타로 아버지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고, 나무 나이테를 직접 세어 볼 정도로 생명 존중에 마음 쓰던 사람이지만 강제 노역으로 나무를 베야만 했고, 과학적 가능성보다 사상이 우선되는 정치체제에 억눌려 살았다.


그녀는 당시의 세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현실에 순응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세상을 전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녀는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외계 생명체를 찾는 일에 투입된다. 직접 고안한 방법으로 우주 밖에 신호를 보내는 일이었다. 8년이 지나서야 회신이 왔다. 자신을 평화주의자라 소개했던 외계인은 지적 생명체인 인간을 자신의 종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했다.

ⓒ 삼체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그 외계인은 회신한다면, 존재를 알아차린 자신의 종족이 지구를 침략할 것이기에 회신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인류 문명에 더 이상 자정적인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며, 인류를 파괴해 달라고 회신을 보낸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결정했던 근거는 오로지 자신의 시각 안에서였다. '중국'이라는 국가, '공산주의'라는 사회 체제, '문화 대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 등이 인류 문명 존속에 대한 판단 근거였다.


인류 존망이 걸린 중대한 사안을 전적으로 개인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빌런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똑똑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운명이 걸린 결정을 내릴 권한도, 충분한 사회 합의도, 객관적 근거도 없었다. 그러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녀 결정이 잘못된 행위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 삶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 물론 인류의 존망자체를 걸만한 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 혹은 그 가족, 동네까지도 영향을 미칠 결정을 뚝딱 내리고는 한다. 나는 사회복지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대부분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좋은 일 하시네요". 과연 내가 이제껏 해왔던 일들이 모두 좋은 일이기만 했을까? 선한 의도를 가지고 결정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전문가로서 국가로부터 인정받았고, 그 자격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존망까지는 아니겠지만, 나는 최소한 한 사람 이상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결정을 쉬이 내리고는 한다.


이는 예원제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자로서 과거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추론했다. 비록 결론이 '이따위 세상은 없어져도 괜찮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녀 또한 마음만은 선한 의도를 가졌을 것이다. 이 부조리한 세상대신 선진 문명이 지배하는 유토피아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수행했던 결정과 서비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나의 주관적 경험과 부산이라는 지역 환경, 사회 문제로 떠오른 시대적 배경과 현상 등을 토대로 전문성이라는 애매한 가치 판단 아래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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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왕 생각한다. 내가 진행했던 사업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을 텐데, 나는 합리적 판단을 내렸는가. 전문가라는 권위로 나의 결정을 상대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결과에 마땅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그러다가 결론에 도달한다. '전문성이라는 것은 그저 다른 사람의 관심 밖 영역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의 전문 영역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도,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되어서야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전문성이라는 미명하에 중대한 결정들을 자주 방치한다.


예원제는 아버지가 청년 혁명가들 손에 맞아 죽던 때를 회상하며, 진 청에게 문화 대혁명 시절을 이야기한다. '구세계를 쳐부수고, 신세계를 이룩하라'. 이것이 자신의 아버지를 때려죽였던 청년 혁명가가 했던 말 중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공감했던 문장이었다고 말한다. 다만 이것은 과거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이내 그녀는 자신이 구세대였음을 깨닫는다. 즉 쳐부수어져야 함을 홀연히 받아들이고 죽음에 이른다.


예원제는 진 청에게 묻는다. "넌 어떻게 기억될까, 진 청?". 이에 진 청은 "맞서 싸운 사람으로요"라고 말한다. 예원제도 맞서 싸운 방법이 달랐을 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과 지식을 동원하여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이 뭔데 그런 결정을 해요?"라고 묻는다면, 지리멸렬한 현재를 근거로 전문성이라는 오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당당하게 "맞서 싸운 사람이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구세대가 되었을 때, 신세대를 위해 기꺼이 쳐부수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나 적어도 빌런이라 생각했던 예원제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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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빌런을 쉽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빌런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악의 추구 과정도 지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빌런이라 '기억' 될 수 있는 것조차도 범인은 감히 접근하지 못할 정도의 똑똑함과 그릇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확고한 것만큼은 확실했던 신념, 악을 행함에 있어 보였던 디테일은 그녀를 그저 평범한 빌런으로 두지 않게 한다. 그녀가 평면적인 빌런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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