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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y 21. 2024

《더 에이트 쇼》가 원작처럼 게임이 아니라 쇼인 이유

드라마는 사실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 거짓을 곳곳에 배치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요소로 인해서 더욱 사실에 가까워진다. 먼저 '더 에이트 쇼' 참가자 방이 그렇다. 주인공 방인 3층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3개짜리 창문이 있다. 물론 층 수에 맞게 창문의 개수가 늘어나고, 열리지 않는 창문이지만 창 밖 뷰도 배정된 층에 따라 달라진다. 꼭대기 8층은 펜트하우스에서 보이는 풍경이, 1층은 반지하 풍경이 보이는 식이다. 거짓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창문은 비현실을 오히려 현실로 도드라지게 한다.

ⓒ 더 에이트 쇼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아마도 쌓이는 상금을 보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8층은 1분에 34만 원, 즉 일급 4억 8,960만 원인 반면, 1층은 1분에 1만 원, 일급은 1,440만 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2023년 기준으로 국내 20대 그룹 임원 평균 연봉은 10억 9,110만 원인데, 폐지 줍는 노인 평균 연봉 추정금은 190만 8천 원이다. 이 숫자를 드라마에 대입해 보면 과장된 현실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쇼에서 100배라는 비현실적인 물가가 적용되지만, 우리나라 폐지 줍는 노인 연봉에 100을 곱해도 대기업 임원 연봉에 비할 것이 못 된다. 오히려 현실이 더 가혹한 셈이다.


참가자는 쇼를 일찍 끝낼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절대로 노력해서 벌 수 없을 만큼 상금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노력조차도 비현실을 가장한 현실인 것은 마찬가지다. 8층과 1층 참여자의 노력은 가치가 다르다. 상금 획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을 같은 일에 노력할수록 8층 참여자가 손해다. 따라서 8층 참여자의 노력은 1층에 비해 월등한 권력을 갖는다. 뻔하게 전문직과 비숙련 노동을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이제는 법제화가 되는 것을 현실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당 노동의 최소한 금전적인 가치를 다르게 주자고 하는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크게는 두 가지로 이야기된다. 하나는 업종별로 다르게 주자는 것과, 다른 하나는 대상별로 다르게 주자는 것이다. 이미 서울시의회에는 만 65세 이상 노인을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배제하자는 건의안이 제출된 상태다. 나는 이것이 《더 에이트 쇼》가 원작처럼 '게임'이 아니라 '쇼'라고 명명된 이유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더 에이트 쇼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끝없이 비현실과 현실을 대조시키며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부추기고, 이 쇼를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동조하도록 한다. 혹시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올 때 1층 참여자가 한쪽 다리 장애로 인해 일에 참여하지 못했을 때 민폐라고 생각했거나, 1층 참여자가 다른 사람 똥을 자신이 참고 견딘다 했을 때 당연하다 생각했지 않았는 가?'를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아니면 '3층 참여자가 장기자랑으로 췄던 춤이 재미가 없어서 시간을 늘리지 못했을 때, 3층이 똥을 이어받겠다고 했을 때는?' 어떠한가.


'게임'이란 정해진 룰에 따르는 것이다. 처음부터 장기자랑도 계단을 오르거나 내리기 시작했을 때도, 다른 사람 똥을 한 명에게 몰아주자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러한 조건이 있었다면, 애초에 게임이 성립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게임이 아닌 쇼다. 그저 외부 사람이 보기에 재미있는 구경거리면 족하다. 일방적인 웃음을 제공해야 하는 지극히도 불공평하고, 합리적이지 않으며, 자극만을 추구하도록 한다.


이것에 익숙해지면 쇼의 참여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픽셀이 된다. 참여자가 상금을 받아 현실로 복귀했을 때를 걱정하는 시청자는 없다. 무수한 폭력과 자극 속에 절여진 참여자의 삶은 결코 이전보다 나을 수가 없다. 이 쇼가 CCTV 너머로 관람하는 형태이듯, 이 드라마를 보는 우리도 각자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tv나 태블릿 같은 자신만의 CCTV로 관람하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상금 대신 지급하는 것 또한 구독료라는 돈이다.

ⓒ 더 에이트 쇼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매 회차 드라마가 끝날 때, 《더 에이트 쇼》 드라마 타이틀(The 8 Show)에는 8이 나타난다. 이 숫자는 시계 방향으로 회전을 해서 원 위치로 돌아온다. 숫자 8은 무한대 기호(∞)와 생김새가 같다. 이는 마치 8층 참여자가 가지는 권력이 무한함을,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메울 수 없는 것임을, 언제까지라도 이 쇼는 멈추지 않는 것임을 말하는 것 같다. 공정한 게임이 아닌 쇼는 그렇게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상시 공연 중이다.


* 원작은 웹툰 작가 배진수의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이다.

ⓒ 더 에이트 쇼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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