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용아 얼른 와서 밥 먹어라". 몇 번이나 불러야만 밥을 먹으러 갔다. 하지만 밥상에 놓여 있는 LA 갈비를 보고 나는 짜증을 냈다. "또 갈비가?". 갈비를 두고 몇 번의 우격다짐 끝에, 어쩔 수 없이 우걱우걱 밥과 갈비를 밀어 넣는다. 아주 배부른 소리임을 잘 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정육점이나 고깃집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LA 갈비를 질리도록 먹었다. LA 갈비는 우리 집에서 만큼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내가 열 살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나와 남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40년이 넘도록 밥 차려본 적이 없었을 아버지에게 매일 저녁밥을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남자가 요리를 하는 것이 환영받던 시대도 아니었고, 동영상을 보면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식재료보다 나무가 친숙한 목수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LA 갈비였다. 양념에 재워진 고기를 잔뜩 사다 놓으면, 구워서 먹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 정도는 열 살이었던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며칠씩이나 연달아서 먹으면, 아무리 맛있는 LA 갈비라고 해도 질리기 마련이다. 그때가 되면 찬장에 쌓여있는 스팸을 구워 먹었다. 스팸은 선물 받아먹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 집은 그 비싼 햄을 직접 사 먹었다. 갈비처럼 스팸 또한 선택의 영역은 아니었다.
누가 보면 넉넉하게 살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절대로 가정 형편이 넉넉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함이었다. 당시만 해도 간편식이랄 것이 별로 없었다. 프라이팬에 무언가를 구워 먹는 정도가 우리 집의 세 남자가 할 수 있는 요리였다. 지금에서 돌아보면 아버지는 국을 참 좋아했는데, 나와 남동생이 국을 잘 먹지 않다 보니 국은 밥상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끓인 국이나 찌개는 첫날에 항상 맛이 없었다. 간도 싱거웠고, 깊은 맛은 당연히 없었으며, 겨우 형태만 갖추고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하지만 다음 날에 국을 데워 먹으면 그때부터 맛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다. 그렇게나 싱겁던 국물이 이제는 짜서 도저히 못 먹겠다 느껴질 때까지 데워 먹었고, 그때가 되면 나와 동생은 질려서 먹지 않았다.
짠 음식을 싫어하지만, 음식이 버려지는 것은 더 싫어하던 아버지는 건더기가 하나도 남지 않은 국물을 끝까지 먹었다. 그렇다 보니 국의 마지막은 항상 잡탕찌개였다. 순수한 식재료는 아니었고, 상하기 직전의 떡국 떡이나, 냉동 만두, 먹다 남은 스팸이 주로 그랬다. 간혹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가 들어간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에야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상한 것과 같이 인식하던 때였다.
'괜찮다.'는 말은 자라면서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음식 앞에서 아버지는 관대했다. "며칠정도는 지나도 괜찮다". 그때부터 소화기관이 단련되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대수롭지 않게 먹는다. 간혹 곰팡이가 피어있는 식재료를 봐도 씻어 내고, 충분히 익혀서 먹는다. 오히려 국에 이것저것 넣지 않으면 심심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나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다.
'가난'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이 넉넉하지 못함'을 뜻한다. 흔히 가난을 단순히 돈이 없다는 것만으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가난에는 위생과 보건, 생존에 필요한 식료품, 의식주 충족, 최소한의 교육 등 인간이라면 마땅히 기본적으로 가지는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결핍은 다른 결핍을 부르기 마련이다.
또한 가난은 순간의 결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가난은 미래의 가난과 함께다. 식재료에 핀 곰팡이를 씻을 때처럼 말끔하게 씻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바짝 익혀도 과거의 가난은 미래에도 쿰쿰한 맛을 남기기 마련이다. 나도 아버지처럼 잡탕찌개를 끓여 먹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도 '괜찮다.'라며 먹고, 몇 번을 데워서 먹다 질리게 되더라도 끝까지 먹는다.
놀랍게도 가난은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가난이 나에게 대물림되었듯, 나의 가난은 함께 사는 강아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유통기한 얼마 남지 않아 할인하는 사료를 서둘러 구매하는 나의 모습을 볼 때면, 섬뜩함을 느끼고는 한다. 강아지가 말을 할 수 있고 유통기한이라는 것을 이해한다고 가정하면, 나에게 "이번에도 유통기한 얼마 안 남은 사료 샀나?"라고 말했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부모님 이혼이 비자발적 가난의 시작이었듯, 강아지에게도 비자발적 가난이 전해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제 나이가 들어 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추석이나 설날과 같이 연휴가 긴 명절이면, 여전히 LA 갈비를 잔뜩 산다. 그렇다고 빨간 보자기에 들어 있는 갈비는 아니다. 마트에서 플라스틱 통에 비닐 포장된 갈비다. "연휴에 먹을 것 없으면 먹어". 이제는 독립한 아들에게 여전히 갈비 주는 것을 보면, 아버지 삶에도 그때의 가난이 여전히 씻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갈비, 스팸, 잡탕찌개는 누군가에게 부유함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가난의 형태가 존재한다. 우리 집에서 만큼은 LA 갈비가 가난의 상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