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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r 13. 2024

가짜 웃음을 연습합니다.

나는 가짜 웃음을 연습해야만 했다. 더 이상은 진실된 웃음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토요일이었다. 그때는 매주 토요일 학교를 갔는데,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부모님이 이혼서류에 서명했다는 것을 우연한 계기로 알고 있었기에, 토요일이면 집에 있어야 할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나쁜 상상만 하도록 했다. 몇 시간의 끔찍한 상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이혼을 합의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한동안 부모님의 사이는 좋아 보였고, 나는 안도하면서 방심했던 듯하다.

처음에는 엄마가 떠나갔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 부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기다려봐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가 사라졌음을 인정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울기 시작했다.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울음에는 아마 부모님의 이혼을 방심했던 나 자신에 대한 원망도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아빠가 퇴근하고 저녁쯤 돌아왔을 때, 나는 아빠에게 억지를 부렸다.

"아빠, 엄마 다시 데려오라고. 내가 말 잘 들을게". 내가 울면서 어떻게 억지를 부렸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잘할 테니 엄마를 다시 데려오라 억지 부렸다. 나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 아님에도, 내가 잘하겠다는 말이 아빠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의 마음까지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가령 내가 서른이 넘은 현재에 부모님이 이혼을 한다면 울음이야 참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억지를 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나의 억지에 대한 아빠의 대답도 정확하게 기억이 날 리가 없다. 아빠는 나를 다그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아빠는 나의 억지를 그저 묵묵히, 또 온전히 받아내기만 했던 듯하다. 아마 이리도 기억이 흐리멍덩한 이유는 내가 살아내기 위함일 테다. 사람은 아픈 기억을 잊고, 왜곡하도록 진화해 왔으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밤까지 울다 지쳐서 잠이 들었고, 다음날인 일요일에도 종일 울었다. 평소에 밥을 먹지 않았으면 혼났을 테지만, 그 주말만큼은 우느라 밥을 먹지 않아도 혼나지 않았다.

퉁퉁 부은 눈으로 월요일에 학교를 갔다. 친구들은 내게 "무슨 일 있나?"라고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혼이 흔하지 않았고, '엄마 없는 자식'이라는 것은 흉에 가까웠다.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놀림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숨겼다. 제일 가까운 친구에게 조차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야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웃는 것을 연습해야만 했다. 철저히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우리 집에는 커다란 거울조차 없었다. 화장용 손거울을 들고, 나는 웃음을 연습했다. 웃음에 집착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하하"하고 소리 내서 웃어도 보고 억지로 미소 지어 보았지만, 내 웃음이 인위적인 것을 나 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나가다 거울이 보일 때면 항상 웃는 연습을 했고, 몰입하는 것을 넘어 집착하기에 이르렀다.

겨우 가짜 웃음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지만, 가짜 웃음에는 눈웃음이 없다. 아무리 행복을 상상하며 몰입해도 나는 눈웃음을 갖지 못했다. 진짜 웃음은 눈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나는 눈웃음이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 간혹 하회탈처럼 일그러지는 눈웃음을 보거나, 숱한 눈웃음으로 이미 눈 옆 주름이 선명하게 생긴 사람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에게는 진짜 웃음이 있구나'라고.

아무리 몰두하고 집착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나에게는 진짜 웃음이 그렇다. 그렇다고 매일을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슬픔과 비참함, 절망스러움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부모님 이혼은 더 이상 선명하지 않게 되었고, 비록 가짜 웃음이지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를 법한 웃음을 장착했고, 부모님의 이혼마저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담담하고도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 그 과정들이다. 나에게는 부모님의 이혼도 이와 같았다. 부모님의 이혼을 부정했고, 민감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분노했고, 아빠한테 엄마를 데려 오라 협상했고, 기약 없이 울다가 지쳐서, 웃음을 연습한 것이 그 다섯 단계였다. 이렇게 본다면 부모님의 이혼 전 열 살이었던 나는 이미 죽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거울을 앞에 두고서, 웃는 연습을 할 때가 있다. 비록 노력만으로 진짜 웃음은 얻지 못하겠지만, 공허한 가짜 웃음일지라도 지금의 나를 살도록 한다. 그래서 나는 가짜 웃음을 연습한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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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직업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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