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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pr 11. 2024

가난을 팔겠습니다.

[프롤로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줘서 고맙습니다". 내가 <가난을 팔겠습니다>를 꾸준하게 쓰면서 받았던 격려의 댓글이다. 분명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임에도, 나는 이 댓글을 마냥 좋아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에 이미 가난이라는 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느끼는 것은 일반적이다. 예컨대 "개천에서 용 난다."와 같은 속담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알듯, 개천에서 용이 자라기 힘든 세상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듣기 싫었던 말이 또 있다. 일명 '효자 강요'다. "재용아, 이런 상황일수록 네가 아버지에게 잘해야 해". 나는 부모님이 이혼할 당시에 열 살이었지만, 어른스러워야만 했다. 그렇게 강요받은 효자 임무를 완수하면, 후속타가 이어진다. "재용아, 너 참 효자네". 나는 효자일 수밖에 없다. 효자가 되지 않으면 효자를 강요받았고, 몸은 어린이였지만 마음만은 어른이 되어야 했다. 내가 경험했던 가난은 나의 탓이 아니었는데, 나는 이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천에서 용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가난을 극복해야 했다.

ⓒ HY S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나는 가난이 온전히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었으면 한다. 나의 삶은 가난에서 벗어난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삶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개천에서의 삶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가난했던 삶마저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개천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의 삶이 용, 즉 '극복해 낸 뒤 성공'이라는 형태로 귀결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가난한 사람 혹은 가난했던 사람은 극복이라는 마음의 짐을 항상 짊어지고 산다. 그 혹독한 무게의 짐을 함께 내려놓기 위해 나는 가난을 쓰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가난의 다양한 형태를 극복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가난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음에도 개인의 탓으로 여기는 것이 여러모로 쉽다. 우리나라에는 '수저론'이 있듯이, 일본에는 '오야 가챠'라는 말이 있다. 부모를 뜻하는 '오야'와 뽑기를 뜻하는 '가챠'의 신조어로 부모 뽑기의 결과가 인생 전부를 결정한다는 일종의 풍자다. 가난은 다양한 원인과 개인이 조절할 수 없는 환경의 복합적 결과다.


가난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가난한 현실'보다 '공감의 멸종'으로 생각된다. 가난한 것은 사회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시스템을 통해 부의 재분배로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면 된다. 하지만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생각과 수저론이나 오야 가챠에서 볼 수 있듯 삶을 그저 '운'에 맡기다 보니 현생을 쉽게 포기하는 현상, 이미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손 내밀기보다 손가락질하는 것이 애초에 더 쉽다.


더 심각한 것은 가난이 빈곤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은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관계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난은 게으름, 불성실함, 능력 부족 등의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로 가난을 드러내기 조차 어렵다. 따라서 가난은 숨겨야 하고, 숨기다 보니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더군다나 가난은 순간의 경험으로 끝난다 생각하기도 하지만, 당뇨와 같이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씻어 내지 못할 흔적을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안온 작가, <일인칭 가난>. 마티.

이처럼 가난은 다양한 형태와 시간이 뒤섞여있다. 하나의 가난 형태를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연결된 가난 형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소설에 한 문장이다. 나는 가난이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가난을 쓰기 시작한 것도 '안온' 작가의 <일인칭 가난> 프롤로그를 읽고였다. 그는 "'가난'을 주어로 문장을 쓸 때는 심히 망설였지만, 그래도 썼다. 다른 누군가가 이어서 일인칭의 가난을 쓸 테니까. 세상에는 빈곤 계측 모델로 잡히지 않는 일인칭의 쟁쟁한 목소리들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저마다의 가난이 존재할 텐데 내가 경험했던 것은 '경계 밖 가난'이었다. 국가에서 지원할 만큼의 빈곤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가난했다. 이혼이라는 것이 쉽사리 용인되지 않던 사회 분위기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쉽게 위축된 삶을 살았고, 친구나 친척 등 주변 사람과 진실된 관계 맺기가 어려웠다. 내가 경험했던 가난은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형태였다. 가난을 스스로 이겨내도록 강요받았다. 나에게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극복'하거나 '도태'되거나. '괜찮음'은 선택지에 없었다.


이처럼 수많은 가난이 그저 '괜찮은' 사회였으면 한다. 누구도 가난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다. 금수저를 물고 좋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날 것인지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응당 처음부터 가난을 선택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난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기저에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택하지 않았지만 가난한 삶을 사랑할 수 있다면, 가난해도 괜찮은 사회가 있다면 그곳은 안전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가난이라는 것이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닌 드러낼 수 있는 삶의 모습 중에 하나가 되면, 가난의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 것이다.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가난마저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현재는 각자의 완벽함을 과시하는 사회인 듯하다. 퍼스널 브랜딩을 위해 스스로의 단점은 장점 뒤에 숨겨야 하고, SNS는 자신이 아닌 것에 가까울수록 게시하기 좋고,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해서는 안된다. 즉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가 없는 사회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모든 것에 있어 완벽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서로의 완벽함을 감시하는 사회보다는, 서로의 치부를 감싸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 Yogi Purnama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모두가 초인적 힘을 가진 용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개천에서 태어나 잉어나 소금쟁이, 개구리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실은 피라미드와 같아서 권력, 재력, 매력 등을 갖춘 사람도 몇몇만 용이 될 수 있다.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부의 양극화, 의료 기술 발달과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고령화, 다름에 대한 혐오의 확산과 공감 부족 등의 사회이기에 개천에서 용으로 자라기는 더 힘들어졌다. 우리는 대부분 가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 많은 가난이 세상에 드러나 서로 공감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나는 가난을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치욕스럽게 팔아보려 한다. 내가 꾸준하게 팔아볼 가난이 저마다의 가난을 드러내도 괜찮음을 전하는 것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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