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람이 되어가는지
매일의 관심사가 다르고, 새로운 것이 넘쳐난다. 내가 가진 몇 가지 역할이 내게 요구하는 것에는 새로움이 없지만, 그 역할마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입장이 변해감에 따라, 상황 또는 지식의 정도, 장소 등 많은 변수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거나 '쌓아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직관적일 것이다.
'되어간다'거나 '쌓아간다'라는 것은 일종의 방향성인데, 결과라기보다는 과정이다. 나를 소개할 때 형용사로 수식되듯 '나는 어떠한 사람이다'라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종착역이라고 가정하면, 그곳까지 가기 위해 멈춰 서는 것이 매일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정거장이다. 종착역까지 급행열차를 탄 듯 직선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내부 순환 열차를 탄 것처럼 빙빙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종착역에 빨리 가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종착역임을 알고 가느냐다. 즉, '어떠한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가는지'다. 단순히 빠르게 가는 속도나 종착지에 몰두하게 되면, 창밖의 풍경도 함께 타고 가는 사람의 감정도 놓치기 쉽다.
심지어 내가 설정한 종착역은 끝이 정해져서 멈춰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끝이 없는 듯하다. 도착했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가는 도중에 종착역이 바뀌기도 한다. 노력해서 종착역까지 왔지만 이곳이 종착역이 아님을 깨닫고 반대로 돌아가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종착역보다는 정거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종착역에 살기보다는 정거장에 산다.
정거장에 사는 것에 충실해지면 종착역이 의미가 사라진다. 종착역에 도착하고서 변화하지 않는 개인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며 개인에게도 변화를 요구한다. 사회에 발맞춰 항상 변화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내가 위치한 곳이 정거장인지 종착역인지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점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는 원래'라는 생각 또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사소한 것에도 도전하지 않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 도전은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이분법적 행위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완성하기 위해 쌓아 가는 과정이다.
그제의 나와 어제의 나, 오늘의 나는 다르다. 아마 내일의 나 또한 다를 것이다. 그제의 나는 주말에 가게 될 근교 여행에 들떠 친구들과 설렘을 나누는 사람이었고, 어제의 나는 열흘 전 주문했던 해외 직구 마이크를 받아 흥에 흠뻑 빠져 노래하는 사람이었고, 오늘의 나는 아침에 비가 와서 산책해 주지 못해 헐레벌떡 퇴근하고 집에 왔지만 소변 실수를 하지 않은 강아지를 한껏 안아주는 사람이다. 나는 정거장에서 정거장으로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