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음, 적당함과 좋음

관계를 바꾸는 힘

by 김재용

삶을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을 구분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잘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사람과는 잘 지내고 싫어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가지려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내 모든 것을 내어줄 만큼 잘해주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외면한다.


가장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힘들어서 울고 있는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나도 친구 몰래 울었다. 그 일이 있고서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가 나를 위해서 울어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얕게 많은 사람들을 아는 것보다 깊게 몇몇 사람들을 아는 것이 내게 중요해졌다.


몇몇 사람들에게만 내 애정을 쏟아붓다 보니 내가 주는 만큼의 애정이 돌아오지 않아 힘들었다. 그 사람들에게도 내가 좋은 사람이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주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로부터 내게 오는 애정의 절대적 양은 당연히 내가 주는 것에 비해 작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힘들어했다. 왜 힘든지도 모르는 힘듦은 스스로를 더 힘들게만 했다.


내가 내 기분 맞춰주기 너무 힘들다


힘듦은 내 기준에 있었다. 내가 주는 사랑만큼 돌려받겠다는 집착. 건강한 사랑이 아니었다. 내가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의 양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받는 사랑의 양은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주는 사랑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듦의 동굴에서 나올 때까지 주변을 찾아준 사람들, 내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묵묵히 기다려 준 사람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간 사람들. 내게도 좋든 싫든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다.


다시금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하기 시작했을 때, 더 줄어든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만 관계하려는 경향성은 더욱 짙어졌다. 경향성은 '좋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에 왜곡을 일으켰다. 좋은 사람이 하는 행동에 싫음이 묻어있더라도 내게 좋은 사람이 되었고, 싫은 사람이 하는 행동에는 좋음이 묻어있더라도 내게 싫은 사람이 되었다.


지금 내게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은 크게 의미가 없어졌다. 이는 내 생각과 기준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나타낸다. 편협한 사고를 하면서 매일 다양성을 외치는 모순. 모순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기준을 올바로 돌려놓아야 한다. 진정 싫어하는 대상이 '사람'인지, '행동'인지를 구분하는 것. 싫어하는 대상이 '행동'이라면, 정중히 부탁해서 바꿔나가야 한다. 만약 싫어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면, 내가 바뀔 수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더 나아가서 제삼자의 입장에서 진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장기를 두는 사람은 내 입장에서만 몰두한 나머지 훈수를 두는 제삼자가 보는 더 좋은 수를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진실은 언제나 반쪽짜리다. 멀리서 바라본 진실을 바탕으로 싫어하는 사람을 단순히 '적'으로 볼지,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볼지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싫음을 적당함 또는 좋음으로 바꾸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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