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휘리릭. 잡으려고 몇 번이나 휘저었던 나의 손이 무색하게도, 나의 손을 거부한 아이폰은 끝내 떨어졌다. 이미 상처 투성이인 아이폰은 역시나 액정으로 먼저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아이폰을 줍기 전에 문득, 전날 밤 액정 보호필름을 바꾼 것이 기억났다. 7,900원이라는 금액이 떠오른 것은 안타까움이 뇌 속을 스치는 시각적 신호였을 테다. 하지만 안타까움이라는 뇌 속의 전기 신호는 곧 행복이 되었다.
작은 책방 <여기서책>에서 나오며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한 손에는 개업을 축하할 겸 화분을 들고 들어 갔지만, 나올 때는 손이 가벼워서 그랬던 듯하다. 사실은 마음도 가벼웠다. 수년 전부터 연을 맺은 대표님의 개업 소식을 알지만 찾아가지 못했기에 무거웠던 마음이다. 그럼에도 대표님은 무엇 하나라도 더 내어주려 했고, 책 표지에 붙여진 추천의 말과 대표님과 서로의 안녕을 묻는 대화가 마음을 가볍게 했다.
물리적인 화분 무게뿐 아니라 마음의 짐도 서점에 내려두고 나왔기에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그 가벼움에 아이폰은 날아갔고, 개운한 마음이 아이폰 액정에 각인으로서 남았다. 오른쪽 윗부분의 액정 깨짐은 사용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깨진 액정을 볼 때마다 <여기서책>을 떠올릴 수가 있기에 안타까움은 행복으로 남았다. 따라서 균열 속에 남겨진 기억은 각인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다만 각인의 행복을 해찰해 보면 낯선 것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짐작컨대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르는 사무실이나 강아지와 산책 중에서였거나, 집 안 화장실이었다면 안타까움이나 분노만 일렁였을 것이다. 심지어 카톡을 확인할 때마다 깨진 액정을 보며 부정 감정에 사로잡혔을 테다. 하지만 일상과 확연히 다르게 휴가라는 시간과 자주 방문할 일이 없는 독립 서점이라는 공간, 알고리즘이나 베스트셀러라는 경향성을 좇는 것이 아닌 타인의 시간과 노력으로 엄선하여 취향을 공유하는 낯선 경험은 불쾌한 경험을 행복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나의 삶에는 루틴이 확고하다. 즉 낯선 것과 조우하는 것이 흔치 않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것에 나를 내던졌을 때 행복은 쉬이 찾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지향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 안에서는 평소와 다름을 찾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행복을 찾기 위해 꼭 시/공간을 바꾸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낯선 것은 행복을 찾는 돋보기가 됐다.
이를 테면 평소에 하지 않는 대중교통으로 출근하기, 휴일을 마무리하고 출근 준비해야 할 일요일 저녁 시간에 풋살 하기, 처음 알게 된 사람과 맥도널드에서 3시간 동안 수다 떨기 등 사소하지만 낯선 경험이 나를 행복으로 이끈다. 낯선 시공간에서는 나의 정체성이 또렷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타인의 생각이 내 속에서 혼재되어 마구 뒤섞이고, 새로운 경험은 다른 경험으로 나를 인도하며 나의 포용성을 넓히기도 한다.
독립 서점을 방문하는 것은 낯선 경험을 쉬이 쌓을 수 있는 방법이다. 나도 독립 서점을 처음 갔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당신의 책갈피>를 갔을 때였다. 취기로 휘청거리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큰 줄도 모르는 취객 사이에 위치한 책방의 고요가, 화려한 네온의 색색이 비추는 거리와 대비되는 누리끼리한 조명의 안온함이,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인다는 공간이 낯설었다.
그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이 모였다. 특별한 대화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서로 생각의 다양성을 표출하고, 안전함 속에서 존중하며, 돈이나 유명세가 목적이 아님과 동시에 글로써 새로운 시도를 함께 하려는 노력이 나에게 낯설다. 우리는 그곳에서 '부산'을 배경으로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소설을 쓰고 있다. 깨진 아이폰 액정이 독립 서점이라는 고리로 연결되어 나에게 부산의 균열을 이야기하라는 것처럼 보인다.
혼자였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해볼까 상상에서 그쳤을, 꿈꾸지 조차 못했을 것이 낯선 것에 있다. 나는 수년간 낯선 것을 배제하며 살았다. 낯선 것으로부터의 행복도 배제했다. 하지만 이제는 깨진 액정을 볼 때마다, 낯선 것에 기꺼이 부딪힌 하루가 떠오른다. 그 낯선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 하루가, 깨진 액정 너머로 오래도록 나를 비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