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 살에 은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은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보다 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먼저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돈에 전혀 예속되지 않는 삶의 구조를 만들 것이다. 그러고 나면 회사에 묵여있던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나로서 온전하게 살기 위한 시간으로 채우려는 것이 나에게 은퇴다.
이를 테면 현재는 일주일에 하루 밖에 치지 못하는 테니스를 은퇴 후에 매일 친다거나, 읽고 쓰는 것에 시간을 늘리고, 여유가 없어 현재는 여행 갈 때만 그림을 그리지만 은퇴 후에는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스케치북과 연필 한 자루 들고나가서 벤치에 앉아 풍경화를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삶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냐면 당장 돈이 되지 않음에도 현재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가며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영포티'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이것은 '나이에 안 맞게 젊은 척'하는 40대 남성을 뜻한다. 단어를 알게 된 경로도, 내가 은퇴 후 유튜브를 시작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지인의 반응에서였다. "영포티 그런 거 하지 마라." 아마 그는 내가 은퇴할 마흔이 되면 영포티의 특성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 듯하다. 나는 아직 40대가 아니지만, 은퇴 후 적절하게 나이 들기 위해 사회가 '영포티'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에 고찰이 필요했다.
신조어나 사회적인 유행, 즉 트렌드는 비교적 젊은 세대가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30 남성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고 한다. 나 역시 청년의 입장에서 영포티를 바라보면 부러움이나 시기 질투하는 것이 부정적 표현으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성형 기술의 발달이나 화장법, 피부 관리, 저속 노화 식단과 홈 트레이닝 등 다양한 방법 덕분에 외모로는 상대의 나이를 추측하는 것이 어렵다. 이제는 돈으로 젊음을 살 수 있다.
젊거나 어리다는 것은, 그 시절을 이미 보낸 사람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청년이 가지는 몇 안될 유일한 장점을 영포티라는 대상도 가질 수 있다면 이를 빼앗긴 것 마냥 느낄 수 있을 듯하다. 특히나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익숙한 우리에게 '구별 짓기'는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화된 현재 영포티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영포티 앞에 '스위트'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데, 정치적으로 진보성향을 가지는 40대 남성이 페미니즘을 옹호함을 비꼬는 것이다. 보수성향을 가지는 2030 남성이 40대 남성과 '구별 짓기' 하는 것이다. 외모를 넘어 그들이 소비하는 것과도 구별 짓기를 한다. 애플의 아이폰, 스투시, 슈프림, 톰 브라운 등과 같이 자신이 현재에는 갖지 못할 선망하는 제품을 사용하는 40대 남성을 비꼬면서 말이다. 그들은 구별 짓기를 함으로써 영포티는 가질 수 없는 젊음의 본질을 소유하려 한다.
독일어에 '샤덴프로이데'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느끼는 기쁨의 심리'라는 뜻을 갖는다.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과정이 영포티 논란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은 단지 특정 세대의 문제는 아니다. 과도한 학업 경쟁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쉬었음 청년이 매년 최고를 경신하고, 영포티로 일컫어지는 세대와 부의 격차는 벌어지기만 하는 것이 현재다.
무엇이 특정한 세대와 성별로 하여금 양극화된 생각을 하도록 하는지에 대하여 사회 구조적으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드러나는 사회 문제나 현상은 단 하나의 원인을 가지는 경우가 없다. 복합적인 원인이 존재하고, 복합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이를 단지 청년 남성이나 영포티라 일컫는 대상의 문제나 현상으로 접근한다면, 제2의 영포티는 반복해서 재생산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