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말은 하고 삽시다.
'긁어 부스럼'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공연히 건드려서 걱정을 일으킨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문제의 발단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있다. 내 생각과 관점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님에 이야기한 것인데, 상대는 왜 굳이 문제로 드러내느냐는 식이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곤 한다.
네가 하는 말이 맞는 거 아는데...
내가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상대는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렇지 않은' 일보다, 그 일로 인해 내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나는 관계 또는 소통의 방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서로 이야기하는 바가 다르니, 소통이 될 리 만무하다. 그렇게 나는 '불편을 제기하는 사람', 또는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
나도 타인의 상황 또는 이야기에 반대해야 되는 것이 불편하다. 타인에게 쓴소리 하는 것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므로 인해 나를 비롯해 사회에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거나, 어떠한 사유든 현재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게 되면 상대의 미래에 더 부정적일 것이라고 예상될 때 이야기한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문제'라니까요?
소위 '사회생활' 속에서 흐르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닌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났다. 상대가 내 이야기를 받아줄 것이라고 판단되지 않거나, 상대와 나의 권력 차이가 너무 크게 나면 이야기하지 않는 듯하다. 이것을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사회와 타협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내 삶을 온전히 살고 있지 못하다고 보아야 할까?
그래서일까. 이러한 상황을 마주한 날이면, 크게 베어 문 닭 가슴살과 같은 것을 씹지도 않고 넘긴 듯 답답함이 가슴속에 머물러 있다. 제로 콜라를 마시든 탄산수를 마시든 억지로라도 뚫어내야 하지만, 문제의 원인인 닭 가슴살은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원인인 닭 가슴살을 제거해야 하지만, 원인 자체를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상대와의 계속된 논쟁은 닭 가슴살을 더 쌓이게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며칠 안에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시간이 지나 닭 가슴살이 있는지조차 기억 못 하면, 답답함마저 망각하게 된다.
이 닭 가슴살이 쌓이다 못해 내 식도를 막게 되면, 그때는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게 된다. 그 닭 가슴살이 일이라면 퇴사로, 관계라면 손절로, 삶이라면 세상과의 단절로 이어진다. 그렇게 번 아웃이 온다.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 마냥 좋은 방법만은 아닌 이유다. 내 삶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상황이 닥쳤을 때 이야기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부조리하고 모순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지 돌아본다. 운이 좋게도 보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흔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나답게 살되, 지혜로운 방식을 아는 삶인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님'에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현재의 나라면, 간접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상대에게 그 목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나답게 사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 직접 닭 가슴살은 빼내지 못하지만 더 쌓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