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을 남에게 맡겨두진 않았습니까?

by 김재용

아버지 생신이라 가족끼리 저녁을 먹기로 했다. 동생과 새로 가족이 된 제수씨, 주인공인 아버지와 나는 해운대의 한 고급 중식 레스토랑에 모였다. 먹을 것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베이징 덕과 어향 광어 튀김이 저녁 메뉴였다. 우리 가족은 처음 먹어보는 요리에 신기함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식사가 끝나고 제수씨가 준비한 케이크에 불을 붙여 노래를 했다. 케이크에 있는 토퍼를 뽑으면 돈이 줄줄 따라 나오는 재밌는 기억도 아버지에게 선물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차창 밖을 바라보며, 꾹 눌러뒀던 양가감정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왔다. 하나는 경상도 남자 셋이 사는 집이라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축하를 해 본 기억 없이, 미역국만 나눠 먹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이러한 자리를 마련하고 함께 축하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 남자 셋이라는 것도 핑계임을 알지만,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같은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너무나도 감사한 시간이었지만, ‘누구를 위한 저녁식사였을까?’라는 불편함이다. 주문한 베이징 덕이 나오자마자 사진 촬영만 하고, 다시 가져가 해체 후 식사용으로 조촐하게 나왔기 때문일까? 매운 음식을 먹을 사람들이 없는데, 매운 요리들만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한 끼 식사 비용으로 보기에는 너무 비싼 가격 때문이었을까? 해운대라는 지역적 관념에 고급 레스토랑이 더해 부과된 이질감 때문이었을까?

가게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 취향저격

새로운 음식에 대한 경험도 좋고, 아버지 생신을 축하한다는 마음도 너무 예뻤다. 우리 가족이라고 좋은 환경에서 비싼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머릿속에,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나는 기념일 자체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축하하거나 기념일이 있다면 나보다는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 더 고민하려고 한다. 당사자가 느끼기에 편안하고 행복한 분위기에서 내 진심을 올곧게 전달하는 것, 나에게는 무엇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은 나와 다른 듯하다. 평소에 내 삶이, 당사자의 삶이 어떻든 관계없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장소와 좋은 분위기에서 축하를 나눈다. 물론 이 또한 그 당사자에 대한 애정이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돈은 나의 노동과 같고, 나의 노동은 나의 시간이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만큼 열정적으로 애정 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는 남들의 시선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축하를 하고, 남들이 좋아할 만한 기억을 사진으로 남긴다. 분명 우리의 이야기여야 하지만, 남들이 “함께” 존재한다.


내 삶과 우리의 삶은 내 속과 우리 속에만 있어야 한다. 내 삶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순간, 내 행복 또한 내 것인 동시에 타인의 것도 된다. 내 행복이 오로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느끼는 행복과 관계없이, 타인이 규정하기에 따라 행복할 수 있음과 없음이 정해질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내가 행복하다 느끼더라도 타인의 시선에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는 단순히 타인의 시선만을 위해 행동하는 기계가 될 수 있다.


특히 현대사회와 같이 관계가 데이터화 된 세상에서는 더욱 이런 경향성이 나타나기 쉽다. SNS에서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기 위해 자행되는 자극적인 콘텐츠들과 인정 욕구는 더욱 사람들을 타인의 시선에 가둔다. 타인의 욕망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부에 중심을 갖고, 항상 나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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