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하다는 착각

by 김재용

어렸을 때부터 건강에는 늘 자신이 있었다. 비록 키는 작았지만, 작은 키는 온전함과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 육상부로 초등학교를 시작했고, 축구와 농구 등과 같은 구기종목을 친구들과 즐겼다. 오징어 게임은 해보지 못했지만, 깡통차기나 경찰과 도둑과 같은 술래잡기를 할 때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주인공이었다.


이십 대 중반이 지나면 노화가 시작된다고 배웠지만, 나만큼은 예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서른이 넘으면서 이제는 하나둘씩 몸이 고장 나는 것을 느낀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가? 마음도 고장 나기 시작한다. 아픈 것이 심각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감, 왜 하필 내가 아픈지에 대한 막연한 분노, 잃게 된 것에 대한 속상함 등 부정적 마음이 내 몸을 휘감는다.


하느님, 부처님 왜 제게 이런 시련을


몸이 고장 나면서 제일 먼저 그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가진 거라곤 건강한 몸뚱이 하나였는데, 정말 자신 있었는데, 몸이 고장 날 리 없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왜 내가 아파야만 하는지 분노할 대상을 억지로 찾았다. 평소에는 믿지 않던 신과 같은 영적 존재마저도 그 분노의 대상이 된다. 문득 이 모든 과정이 쓸모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이처럼 아픔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온전함이라는 낙관을 전제한다. 나는 건강하고, 좋은 사람이어야만 하고, 늙지 않아 현 상태와 같이 온전할 것이라는 착각. 이 온전함이라는 낙관은 건강뿐 아니라 우리 삶 속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내가 신뢰하고 확신했던 주식 투자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바람직하고 공정하다고 느끼는 사회에서. 이 낙관이 깨질 때, 우리는 아프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듯 이 온전하다는 착각으로 인해 아프지 않으려면, 언제까지나 온전하지 않을 것도 알아야 한다. 나의 건강도, 내가 하는 일도, 바라는 사회도 온전치 않을 수 있다. 온전하다 전제하지 않으면,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소모적인 과정도 없을 것이다. 어떠한 것도 온전치 않기에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온전함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의 마법 주문은 "그럴 수 있어"이라는 가능성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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