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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Sep 21. 2022

나는 당신의 '돈'이 아닙니다.

인간답게, 효용보다는 진정성 있게

혓바늘이 돋아 치과에 갔다. 내방했던 치과는 나를 '돈'으로 본다. 정확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나를 돈으로'만' 본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관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감정을 주는 곳이기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아픈 와중에 아는 곳이 없어 다시 가게 되었다. 여전히 나를 '돈'으로 봤다.


혓바늘로 진료 접수를 하고, 치아 CT를 찍었다. 이마저도 다른 치아 건강에 대한 예방 차원이겠거니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서 왜 치과에 내원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했지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아오는 질문은 "다른 데는 불편한 데 없으세요?"였다. 원장님은 잠시 오셔서 눈으로만 보고 가시고, 간호사분께 레이저 치료를 지시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치료 후 주의사항 같은 것은 알려주지 않는다. 치료가 끝났으니 '돈'으로써만 효용가치가 있던 나는 '돈'을 내고 병원을 나선다.


1층 약국에 들어가서 병원에서 알려준 약을 달라고 약사분께 말씀드렸다. 오히려 약국에서 나를 진단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그 약과 더불어 비싸 보이는 약들을 가져오셨다. 심지어 영양제도 사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나는 아직 '돈'으로써 효용이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상대를 '돈' 또는 '기회'로 이용하려고 하는 순간은 우리 일상 속에서 자주 마주할 수 있다. 일상에서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상대를 올곧이 이용하려는 대화는 보색과 같아서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적나라하게 강조되어 돋보인다. 이미 드러나버린 이기적인 속내는 상대로 하여금 나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요소가 된다. 특히나 '손절'이 쿨한 감성으로 통용되는 현시점에서는 주위 사람을 잃을 수 있는 행위가 된다.


모두와 손절하는 관계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다는 것과 같다. 인간은 소통과 관계없이는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라는 단어조차도 사람(人)의 관계(門)다. 개인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정의하려면, 동물과 다른 지점을 찾아야 한다.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인을 찾고자 한다면 관계 속의 인간으로서 특성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사회 속에서만 존재 가능한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끊어 나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수렵채집 시대에서 신체적 강인함이 중요한 사회였다면, 현대 문명은 손·발짓을 포함한 다양한 소통이 중요한 시대로 변화했다. 시대적 변화에 맞춰 우리는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진화했다. 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는 '돈'이 아닌 '진정성'으로만 관계를 단단하게 할 수 있다. '돈'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기회'가 아닌 상대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기. '효용'을 떠나 공감으로 소통하기를 통해 '진정성'이 드러나는 순간, 그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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