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에게도 ‘감히’라 할 수 있을까?

by 김재용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올 때가 있는데, 우리 집 강아지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함에도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지 않기 때문에, 친구가 오게 되면 강아지는 적어도 5분 정도는 흥분에 휩싸여있다.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내 침대에 누워서 tv를 보기도 하는데, 그러다 강아지가 친구의 몸을 넘어 다니는 순간.


어딜 감히? 사람 몸을 넘어 다니노?


'감히'의 사전적 정의는 '말이나 행동이 주제넘게', '함부로, 만만하게'로 정의된다. 강아지가 사람 몸을 넘어 지나가는 행위가 과연 주제넘거나, 친구를 함부로 또는 만만하게 생각해서였을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지 사람의 입장에서 이 행위를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만하다'는 것은 사람의 권위의식에서 발현된 것이다. 나는 '주인'이고 너는 '소유물'이라는, 나는 '고등한 사람'이고 너는 '하등한 동물'이라는, 나는 '지시하는' 입장이고 너는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는 일방적 관계. 이것은 사람 몸을 넘어가는 행위뿐 아니라 강아지와의 소통체계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강아지에게 일방적인 복종만을 요구한다. 물론 강아지와 사람의 언어로 서로 상호작용하거나 필담을 나눌 수 없다. 오히려 사람의 언어로만 상호작용을 강요하는 것 또한 강아지들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 함께 맞추려는 노력 없이 내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방적 복종만을 강요하지 않았는가?

서로 간의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강아지에게 일방적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당위성은 부여되지 않아야 한다. 이제껏 강아지를 대함에 있어 우리의 소통체계 안에 강아지가 맞춰주기를 바라 왔고, 고통은 항상 강아지의 몫이었다. 함께 사는 생명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명령에 따를 것만 요구할 수 없다. 강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강아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내게 이야기한다. 불편하거나 아픈 것을 느끼면 낑낑거리고, 배고프면 사료통을 핥거나, 심심하면 내게로 장난감을 들고 오고, 심지어 달라고 하지도 않은 손을 내 허벅지에 얹어 둔다. 얼마 전에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에 화를 내며 강아지를 폭행하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 적 있다. 이는 상하 관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상대를 폭행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부여된 적 없다.


강아지와의 소통에 있어서 우리의 편의만을 생각하거나, 소유주와 물건이라는 복종관계, 지능에 따라 나누는 얄팍한 특권의식 등이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가 현재의 상하관계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 편의만 생각해서, 내 돈으로 고용하는 사람이라서, 나보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이라서 폭행할 수 있을까?'로 사람을 대입해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강아지에 대한 일방적 갑질 사례는 반복된다.


다시 이와 같은 전제를 사람에게 적용해 보자. 내 입장에서만 보지 않고,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과정이 서로를 존귀하게 한다. 상대를 행복과 슬픔 등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생명으로 보아야만 한다. 사회문화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때론 나와 같다는 획일성이 도움 된다. 너와 나는 같다. 단, 존귀하고 존엄하며 존중받아야 하는 생명체로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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