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는 힘을 갖게 한다.

욕망 또는 충동을 자제하는 이성

by 김재용

저녁을 먹고 나면 물을 제외한 다른 음식은 일절 먹지 않는다. 다른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가 다이어트 때문이라거나, 건강이 걱정된다거나, 아침에 얼굴의 붓기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더라도, 그 음식이 심지어 집에 있더라도, 집에 없지만 배달하면 먹을 수 있음에도 먹지 않는다. 그렇게 내 일상의 루틴을 지킴으로 인해 스스로 주인이 된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먹고 싶지만 먹지 않는다. 특히 유튜브를 보는 데, 영상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콘텐츠 중간에 먹방 하는것을 볼 때는 정말 참기 힘들다. 밤에 라면 먹는 장면을 보는 것은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가깝다. 노출된 욕망에 이끌려 찬장에 어떤 라면이 있는지 확인할 때도 있다. 하지만 끝내 먹지 않는다. 참기 힘들면,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을 다음 식사 메뉴로 정한다. 먹고 싶다는 욕망 또는 충동을 자제하는 이성.


우리는 이처럼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을 때, 즉 절제할 때 힘을 가진다. 절제를 통해 힘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필요하거나 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의 의지대로 선택한다. 절제는 내 안의 욕망을 이성으로 조절하는데도 사용하지만, 상대와의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내가 갖춘 능력과 상황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 절제를 선택할 수 있고 이때 힘이 생긴다. 내게 선택권이 없다면, 상대에 예속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에, 응당해야 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절제가 아니다. 예를 들면 작은 개들은 큰 개를 보면 짖는 경우가 많다. 작은 개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큰 개를 향해 짖음으로써 과시한다. 작은 개는 큰 개의 아주 작은 행동에도 예속되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큰 개들은 작은 개가 짖든 말든,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묵묵히 작은 개를 포용한다. 사람들이 이 상황을 보면 작은 개가 용맹스럽다고 생각할까? 오히려 짖지 않은 큰 개가 담대하다 느낀다. 큰 개는 작은 개를 힘으로 억누를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


나는 일상 속에서도 절제를 통해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날이 더워 에어컨을 틀 수 있지만,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는 선풍기를 사용해 더위를 날린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할 수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미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기후 위기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기 위한 의지의 발현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주인의식을 행하는 나의 선택이다. 욕망에 예속되지 않는 삶, 그것이 절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권력이다.


이처럼 절제는 삶의 기준을 내 중심부로 가져온다. 절제를 통해 타인에게 예속되지 않아 내가 중요해지는 삶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게 되며 타인의 시선보다 내가 가지는 삶의 의미와 가치들을 중요시할 수 있다. 절제를 통해 욕망에 이끌려 다니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은,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이성을 바탕으로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 항상 행복한 삶은 존재할 수 없다. 행복은 비울 수 있어야 다시 채울 수 있듯이, 절제하는 삶으로 비우는 삶이 일상화되면 행복이 더 자주 더 오래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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