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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Jan 02. 2023

새해 시작부터 호들갑은 떨지 않기로 했다.

지인들이 보내주는 일출 사진들이 많아서,
굳이 아침잠 설쳐가며 일출 볼 이유가 없겠네.


2023년 1월 1일, 새해 아침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시간은 이미 오전 11시가 넘었고, 언제나 새해 아침이면 늘 그렇듯 지인들이 아침부터 찍은 일출 사진들이 단톡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특별하게 의미 부여하지 않은 날에는 관심이 없는데, 2023년은 더욱 그렇다. 유일무이하게 전 국민이 동시에 나이를 먹는 나라에서 만 나이 도입으로 인해 각자 태어난 날에 따라 한 살을 더 먹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이라지만 만 나이 도입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마당에 1월 1일의 새해 아침은 더욱 의미가 없어졌다.


심지어 현재 통용되고 있는 달력은 일개 종교 교황이 개정한 '그레고리력'일뿐 실제 지구의 생성 시기라든지, 현생 인류가 활동하기 시작한 시간과는 다르다. 단지 세계적인 힘의 질서에 따라 양력을 통용하고 있을 뿐, 오늘 아침의 해와 어제의 해, 내일의 해는 다르지 않다. 특별히 오늘 아침의 해가 강렬하게 뜬다거나 내 케케 묶은 소원을 들어준다거나, 오늘 아침 해를 보면 앞으로 365일을 보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잘 살게 해 주거나 하는 효과는 전혀 없다.


나아가 하루는 지구의 자전을 기준으로 하는데, 그 하루의 시작은 꼭 아침이어야 할까? 고대부터 이어져 오는 역사에서 하루의 시작은 일출, 일몰, 정오, 한밤중과 같이 그 기준이 달랐었다. 현재는 국제표준기구에 따라 한밤중, 즉 0~24시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기준이 달랐다면 새해 아침도 정의하기에 따라 달랐을 수 있다. 다시 말해 2023년 1월 1일의 시작은 인간이 정한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역시나 내게 특별한 의미가 없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호들갑을 떨지 않기로 했다. 이를테면 1월 1일의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거나, 지키지도 않을 1년간의 다짐을 하는 것들을 말이다. 올해 1월 1일은 일요일이라서, 일요일 루틴을 따랐다. 조금 늦게 일어나 평일에 못했던 집안 청소와 빨래, 강아지 목욕과 반질반질한 피부를 위한 마스크 팩,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고 본가에 찾아가 아버지와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는 그런 것들 말이다.


내게는 2022년의 연말과 2023년의 연초는 달라질 것이 없다. 2022년과 2023년은 분절되지 않았고, 나는 연속된 삶을 살아간다. 2022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죽음을 맞이해서 2023년에 몸과 마음을 새로이 리셋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연속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의미 없는 날짜와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달라진 것 마냥 행위한다. 앞으로 평생을 이리도 무미건조하게 살 것이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지 싶다. 오히려 남들이 의미를 부여하니까, 나도 맞춰 호들갑 떠는 삶은 나답지 않다.


나는 묵묵히, 또 나를 중심에 둔 삶을 지속할 것이다. 1월부터 하기로 예정된 '정지우 작가'님과 글쓰기 모임, 최근에 샀던 'WEIRD'라는 책 읽기, 인생의 1/3을 보내는 만큼 체계적으로 업무 처리하기 등 삶은 연속된 원, 그 어딘가에 있다. 단조로울지도 모르지만 원을 빙글빙글 돌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작은 과업들을 달성하고 새로운 과업을 부여하며 원의 크기를 키우는 동시에 완벽한 원보다는 타원으로 만들면서 삶의 속도를 직접 조절하며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202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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