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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Dec 30. 2022

사랑으로 시작한 ‘동감’이 ‘공감’이 되는 순간

스물한 살의 포병이었던 내가 자주포 전차를 탑승하면서, 대학생 시절 단기연수로 떠났던 홍콩 레이저 쇼를 바라보면서, 최근 브런치에서 작가 승인을 통보받았을 때 등, 내 삶의 귀하고 소중한 그 순간들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문득 떠올랐었다. 그 순간들은 마치 꿈만 같아서 '기쁨'이라는 두 글자만으로는 당최 설명되지 않는 시점에서,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이고 싶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어 진다. 특히 쉬이 할 수 없는 경험이라면 더욱, 그 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뿐 아니라 시각과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활용하여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상대가 되고, 상대는 내가 되는 기억을 나누는 것이다.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고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를 것이다. 특별한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순간을 나누고 싶다는 것은,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상대와 함께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마음이 벅차오르다 못해 황홀경에 휩싸여 있는 긍정적 감정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상대가 이와 같은 순간들에 나를 떠올리고, 그 순간을 나와 함께 보내고 싶어 하길 바랐다.


반면 슬프거나 고통스러울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겪는 이 고통을 상대는 추호도 느끼지 않길 바라서일까? 그래서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은 오롯이 혼자 버틴다. 버티고 또 버텨서, 내 안에 슬픔과 고통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다. 참아 인내하거나, 견디는 것과는 다른 듯하다.

© 2022. Unsplash. All right reserved.

사랑의 대상은 꼭 이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우리 집 강아지 끈끈이, 친구, 선후배 등 내가 애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마음속의 황홀경에 찾아온다. 물론 여러 명이 한꺼번에 몰려오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에 떠올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평소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살갑게 연락하는 스타일은 아님에도, 이런 황홀경의 순간에는 내가 먼저 연락하곤 한다. 나 지금 그대를 생각하고 있다고. 이 순간이 기쁨으로 벅차올라 감당할 수 없어 그대와 함께 나누고 싶다고.


그렇게 상대의 목소리를 듣거나, 답변을 문자로나마 받을 때는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미루어보건대 내가 경험하는 순간들의 감정은 정확하게 공유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몽글몽글한 마음만큼은 상대에게 전달되어 같은 감정을 나누지 않았을까? 사랑으로 시작한 "동감"이 "공감"이 되는 순간이다. 난 종종 찾아올 그 순간을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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