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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Jan 12. 2023

'작심삼일-력' 따위는 필요치 않다.

온라인 편집숍 '무신사'에서 2023년 새해맞이 캠페인을 실시한다. 캠페인에 참여하면 추첨을 통해 1,000명에게 '작심삼일-력'을 주는데, 이 달력의 콘셉트는 의지가 부족해서 굳게 먹은 마음조차 3일 안에 포기할 만큼 의지력이 적은 사람에게 '작심삼일' 순환 고리를 3일마다 반복하도록 달력을 세팅해서 1년의 시간을 열심히 살도록 돕는 것이다. 이 달력은 '작심삼일'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뒤집어서 긍정적 관념으로 바꿔냈다. 나는 이 달력을 갖고 싶었다.


'작심삼일'은 나름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한다. 힘든 일을 할 때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스트레스 정도를 낮춰주는 역할을 하는데, 분비되는 시간이 72시간 정도가 한계 지점이다. 따라서 72시간, 즉 3일이 지나면 스트레스를 줄여줄 호르몬이 없으니 더욱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세로토닌이 72시간 이상 지속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나 또한 그렇다. 새로운 일들에 도전했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짧은 시간 안에 포기했던 경험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독한 놈'이라 칭하며, 그렇게 빡빡하게 살아야 하냐며 묻는다.


사실 나는 이렇게 사는 게 편하다. 휴일에 집에서 가만히 있는 시간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 어제도 글을 쓰려고 했었지만, 너무나도 많이 먹은 저녁 핑계를 대며 웹툰을 봤던 2시간이 후회되고 죄스러웠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일하는 기계로서의 삶을 제외하고, 내게 2023년 1월 10일의 삶을 무엇이었나?'라고 되물으며,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단순히 허비해 버렸느니, 내가 헛되이 보낸 이 시간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고 갈망하던 시간이었다.' 등 스스로에게 가학적으로 대한다. 스스로에게 짜증 내며, 내일은 그러지 않겠다 죄책감을 느낀다.


아침에 우연히 '의지력을 무한하게 만들어주는 사고방식'이라는 BBC 칼럼을 읽었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자제력'과 '의지력'은 우리가 가진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 칼럼에서는 '의지력'을 키워 건강과 생산성,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전략 또한 제시했다. 칼럼의 주된 내용은 '의지력이 충전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된 행위 이후에 휴식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피로감을 호소했다. 그러나 '의지력이 저절로 채워진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된 행위가 오히려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제안한다. '의지력'이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로 삼고, 유혹에 자제력을 가질 수 있으며, 나아가 이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를 강화할 수 있다고.


친구 : 이번 연휴에 뭐 해?
나 : 글 쓰고, 책 읽고...
친구 : 밖에는 안 나가 노나?
나 : 내겐 이게 노는 건데?


사람은 단면적이기보다는 입체적이기에 시간과 환경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나는 대체로 '의지력이 저절로 채워진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특별히 쉼이란 게 필요치 않다. 내가 취미로써 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일 또한 그렇다. 고되게 일하고 나서 돌아오는 피드백이나 성과를 보고 있으면, 그게 다음 행위를 이어가는 동력이 된다. 동력은 다시 성과를 낳고, 다시 연료가 되어 나아가게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내게는 모든 과정이 쉼이자 에너지를 얻는 일이다. 내게 작심삼일의 악순환은 없고, 정신적 스태미나의 선순환만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이런 내 모습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 때문에 스스로를 유난 떠는 사람으로 정의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해짐에 따라서 스스로를 유능한 사람으로 브랜딩 했다. 앞으로는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는 사람에게 오히려 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음을 알려주며 주위 사람들과 함께 의지를 기르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작심삼일-력'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작심삼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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