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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r 17. 2023

《카지노》 차무식 또한 피해자였다?

나도 레고가 갖고 싶었다. 정말로.

나도 팽이나 딱지 말고, 친구들처럼 레고를 갖고 싶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그 당시에도 레고는 만원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똥꼬가 찢어질 만큼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고, 나는 일주일에 오백 원씩 용돈을 받았다. IMF가 한창이던 그때, 부모님은 우리에게 저축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의 인내력은 크지 않았고, 나는 당장 레고를 갖고 싶었다. 다섯 달 동안이나 학교 앞 떡볶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문방구 앞에서 마치 사자가 사냥을 끝내기만 기다리는 하이에나처럼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어릴 때부터 체구가 작았던 나는, 날렵하기까지 했다. 사장님의 감시가 허술해진 틈을 타서 나는 내 상반신보다 큰 레고를 들고 집을 향해 마구 달렸다. 심장은 미칠 듯이 두근거렸고, 그 두근거림은 도둑질 때문이었는지 뜀박질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레고를 손에 넣었다. 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니 그 장난감 어디서 났노?". "친구 꺼 빌려왔다". 나는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거짓말했던 것임을 아셨다.


빌려왔던 것 치고는 너무 새 거였고, 빌려왔는데 가져다주지 않으니 들통 날 수밖에. 이제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른이라는 존재는 초등학생의 거짓말 따위 쉽게 알 수 있는 거였다. 들통나게 되자 나는 전부 이실직고했고, 아버지의 손에 붙들려서 레고를 들고 문방구로 갔다.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레고 값을 문방구 사장님께 건넸다. 그리고는 내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레고를 전부 버렸다. 그 당시 너무 가혹했다고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레고를 집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아마 도둑질로는 무엇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시려 하셨던 듯하다.


나는 다시 아버지 손에 붙들려서 집에 왔다. 아버지한테 그날만큼 많이 맞았던 기억은 없다. 신나게 엉덩이를 회초리로 맞고 울다가 지쳐 잠들었는데, 엉덩이가 따끔거려 슬며시 실 눈을 떴다. 아버지는 안티푸라민이라는 연고제를 멍든 내 엉덩이와 허벅지에 발라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고, 나는 잠에서 깨지 않은 척하며 곯아떨어졌다.


《카지노》의 주인공 차무식(배우 최민식)이 고아원에서 배곯는 장면으로 드라마는 시작한다. 이제는 고아원에 맡겨져 먹을 수 없지만, 가마솥 통닭을 먹어본 적 있는 차무식은 친구에게 통닭에 대해 설명한다. 이제는 가마솥 통닭을 먹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친구와 가마솥 통닭을 사 먹기 위해 불개미에 온몸이 뜯겨가며, 쌈짓돈을 마련한다. 가마솥 통닭은 그 피의 대가로는 먹을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돈을 불리는 것이다. 또래 친구들과 피 흘려 번 돈을 걸고 내기한다. 결국 돈을 전부 잃었지만, 일종의 도박을 처음 시작한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 고아원에서 나와 어머니랑 함께 살게 되긴 했지만, 가정환경이 좋지 못했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건달이었는데, 집을 도박장으로 만들거나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마약 심부름도 모자라 집에서 대놓고 마약까지 한다. 심지어 남의 집 단칸방에 얹혀살다 보니, 항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쥐 죽은 듯 살아야 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 공부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지만, 곧 담임 선생님이 바뀌고 대학마저 원치 않는 곳으로 가게 된다. 삶은 연속적이므로 어릴 때부터 경험했던 것을 미루어 보아, 자신은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당장 돈을 벌어야겠다고 이때부터 생각한다. 그는 목표 앞에서 수단은 중요치 않다는 자신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다. 따라서 친구가 불법인 도박 사업을 제안했을 때도, 그에게는 돈이 우선이었다. 결국 한국을 넘어 필리핀까지 가서 그는 도박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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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 범죄자가 되는가? 범죄 전문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 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내가 지켜야만 하는 것이 있고 잃을 것이 있을 때는 대다수의 인간은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테면 최근 가장 사회의 화두인 ‘학교 폭력’을 예로 들 수 있다. 만약 내가 미래에 유명 인사가 된다는 미래를 알고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범죄를 스스로 자제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 안전망을 촘촘하게 만들어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지킬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줘야 범죄의 유혹에서 쉬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가르침은 내게 가족뿐 아니라 살아감에 있어 지켜야 할 것을 알게 했다. 만약 스스로가 지킬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가족이, 나아가 지역사회가, 국가가 사회 안전망들을 빼곡히 만들어야 한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레고를 훔쳤다는 사실이 좋은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잘못했을 때, 이를 바로 잡고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하고 나아가 레고보다 소중한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 아버지는 내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가르쳤고,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킬 것이 있음을 알게 했다.


《카지노》의 최무식에게는 돌아보면 몇 번이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 안전망들이 촘촘하지 못했다. 그물 곳곳이 찢겨 있었고, 그는 언제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가 도박왕이 되는 데 있어 오롯이 차무식 개인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속담이 존재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개천에서는 용이 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차무식이 용이 될 수 있도록, 물도 갈아주고 때로는 먹이도 줘야 한다. 용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타인과 사회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교정복지론’이라는 전공 수업을 들었다. 한 학기 내내 교정복지와 관련한 많은 법안과 규칙을 공부했지만, 내게 남은 것은 교수님의 한 마디였다. "그 범죄자에게 세상 모든 사람이 손가락 질 하고 욕 할 것이다. 사회복지사인 우리마저 등 돌린다면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의 변화를 믿는 것이 사회복지다. 그가 다시금 사회 구성원으로 설 수 있도록 우리 만큼은 그를 지지해야 한다". 연쇄 살인범, 아동 학대범, 성폭행범 등 세상에는 많은 악랄한 범죄자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사회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을 수도 있다. 다만 사회 안전망이 더 촘촘하지 못해서 그 범죄가 일어났을 수 있다.


범죄 자체를 옹호하거나 처벌의 정도를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하지만 왜 수많은 범죄가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지, 그 범죄자가 그렇게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나아가 심각한 범죄가 성공하여 많은 피해자를 낳게끔 했던 사회 구조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등의 수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또 범죄자를 다각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합의의 과정들이 필요하다. 당장 내 가족 중에 범죄 피해자가 있어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게 했던 것처럼, 사회에 누군가는 우리 주변의 사람과 관계하며 서로에게 지킬 것이 되어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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