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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y 09. 2023

커피 한 잔 할래요? 아니, 마셔 주세요. 제발요.

커피와 와인, 위스키를 권유하지만 실패합니다.

직장인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쉬이 건넬 수 있는 인사가 있다. "커피(차) 한 잔 하셨어요?". 커피가 됐든, 차가 됐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상대방은 어제 늦게까지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술 한잔 기울이다 숙취가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밀린 업무를 쳐내기 위해 야근을 했을 수도 있고, 새로 나온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느라 밤을 새웠을 수도 있다. 상대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어제의 피로 따위 몸에 차곡차곡 쌓아 두고서라도 업무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만약 다양한 이유로 인해 피곤함이 남아있다면, 카페인을 보충해서라도 '으쌰으쌰' 일을 해보자는 독려쯤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 Cathryn Lavery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그런데 사무실에 한 두 명쯤은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권하는 커피는 단순히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를 권한다거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따뜻하면서도 형식적인 독려와는 다르다. 그들이 묻는 "커피 한 잔 하셨어요?"는 "자네, 제대로 내린 커피 한 잔을 마셨는가? 설마 믹스 커피 같은 것을 마시지는 않았겠지?” 정도로 직역하면 된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순간, 그들은 재빨리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아내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이 정성스레 내린 커피를 상대가 맛있게 마시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그들에게는 커피를 내려준 보답으로 감사의 인사나 안부를 묻기보다, 커피에 대해서 칭찬 한 마디만 하면 된다. 디테일하게 이야기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 되겠지만, 그렇게 디테일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를 테면, "향이 좋네요"나 "팀장님이 핸드 드립한 커피가 제 입맛에 맞아요" 정도면 차고 넘친다. 만약에 이 정도로 이야기한다면, 앞으로 특별한 노력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그들은 직접 내린 커피를 알아서 바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이리도 잘 아냐면, 내가 그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칫, 지나친 관심을 보여 커피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게 되면 그들은 커피의 기원부터 역사, 종류 등에 관해 설명하려 할지도 모른다.


"제가 아메리카노는 못 마셔서요". 카페인에 민감해서 커피를 한 잔만 마셔도 심장이 벌렁거린다거나, 당최 쓴 맛만 나는 걸 왜 마시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강적을 만날 때면, 그들에게 드립 커피를 경험하게 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이제까지 인스턴트커피나 얄궂은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는지,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에 가면 무엇을 주로 마셨는지,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마셔본 적 있는지 등 마치 경찰이 된 것 마냥 취조를 시작한다. 어떻게든 내가 드립 한 커피로 이제까지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던 상대에게 좋은 커피를 알게 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실패하지만 말이다. 만약 내 노력에 감동하여 상대가 커피를 마시게 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얻는 것은 전혀 없다. 혹여나 있다면 약간의 쾌감 정도랄까?

@ Maksym Kaharlytskyi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이러한 권유의 경험은 커피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 흠뻑 빠져버린 위스키와 와인 또한 그러하다. 술을 잘 받는 몸은 아니지만, 마시면 술도 는다기에 참 많이도 마셨다. 결과적으로 술은 늘었지만, 숙취도 늘었다. 이로써 술을 해독할 능력은 늘어나지 않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이가 들어가며 예전처럼 술을 마시면, 다음날 점심은 고사하고 저녁은 돼야 술이 깼다. 따라서 좋은 술을 마시되, 아주 소량을 마시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위스키와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고, 좋은 술들은 커피처럼 향과 맛, 질감, 여운 등 즐길거리가 넘쳐났다. 나는 이렇게나 다채로운 즐거움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하나에 빠지면 쉬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수십 시간을 쏟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와인과 위스키를 제대로 음미하며 마시는 방법부터 좋은 술을 고르는 방법, 술의 종류와 역사 등 최대한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한다. 수차례 공부하고 나서 친구들과 와인, 위스키를 마시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마치 인문계 고등학교 문과의 과학시간과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와인이나 위스키에 관해 설명하려는 선생님과 설명 따위 듣지 않고 그저 시음이 중요한 학생들의 대립이 꽤나 치열하다. 이 대결 역시 대부분은 학생들이 승리한다.


그러나 시음하러 온 친구는 그나마 양반이라 볼 수 있다. 대부분은 그냥 소주가 좋다며, 아예 관심조차 없다. 그리고는 내게 이야기한다. "너희 집에서 술 마실 때 위스키가 있으면, 마셔줄게". '마셔줄게'라니. 쥐꼬리만 한 사회복지사 월급을 모아서 겨우 샀는데, 이러한 취급은 부당하다. 따라서 친구 놈에게 괜히 으름장도 놓아 본다. 이미 술에 취한 상태에 마시거나, 제대로 음미하지 않을 거라면 위스키를 내놓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항상 내가 마셔달라고 권유하는 입장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 Javier Molina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대부분은 내 선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애써 권유하는 것들은 취향이나 관심 따위를 상회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 테면, 목마를 때 마시는 물 한잔과 같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내 오만이었고, 모두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었다. 커피와 위스키, 와인 등은 취향에 따라서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관심 가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드물다. 궁금하면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항상 경험하고 싶어 한다. 오만은 여기서 생겼던 듯하다. 나는 거의 모든 것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 탐험자로서 움직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내 중심적 사고에서 출발한 오만이었다. 나에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다. 내 오만으로부터의 권유를 멈춰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느끼는 좋음마저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 위스키 테이스팅 노트를 기록하는 등 혼자 취향을 즐기는 법도 찾았다. 권유하는 것의 종류를 떠나서, 적당한 권유에서 그칠 때 서로가 아프지 않았다. 이제는 아침 인사를 바꿔 본다. "힘차고 강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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