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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y 08. 2023

통풍 환자지만, 돼지 국밥은 먹고 싶어.

"이모, 여기 돼지 국밥 세 그릇 주이소". 우리 가족은 4인 가족이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국밥 세 그릇은 언뜻 당연해 보인다. 초등학교 1, 3학년이 국밥을 먹으면 얼마나 먹겠는가. 아마 부모님이 각 한 그릇씩, 나머지 한 그릇을 동생과 내가 나눠 먹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세 그릇 중 하나는 아버지에게, 다른 하나는 나에게, 남은 한 그릇이 어머니와 동생 앞에 놓였다. 네 그릇의 국밥 먹을 돈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어머니는 식사량이 많지 않았고, 동생은 어머니의 국밥을 조금 나눠 먹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에 반해 나는 식탐이 너무나도 많았다. 특히 나의 소울 푸드인 돼지 국밥을 향한.


또래에 비해 덩치가 컸다면 한 그릇을 다 먹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나보다 키가 작은 동성의 친구를 보지 못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키 순서로 자리가 배치되었는데, 학년이 올라가도 내 자리는 왼쪽 맨 앞인지 오른쪽 맨 앞인지만 달라졌다. 덕분에 나는 항상 맨 앞줄 어느 귀퉁이에 앉아서 칠판을 비스듬히 쳐다봐야 했다. 물론 고등학교쯤 가서는 이름 순으로 번호를 부여받게 되면서부터 뒷자리의 칠판 뷰도 감상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 조선일보 DB. All right reserved.

이처럼 키도 덩치도 작았던 내가, 당시에 돼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함께 나오는 소면까지 야무지게 넣어 먹었는데, 깍두기와 양념된 부추를 양파와 함께 다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돼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먹기 위해서 당연히 바지 지퍼쯤은 풀어헤쳐야 했다. 유럽 귀족들이 식탁에 포크와 나이프를 두는 순서가 있듯이, 지퍼를 내리는 것은 돼지 국밥에 대한 나만의 식사 예절이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 만약에 바지 지퍼를 내리고서 국밥을 먹고 있으면 아마 유치장으로 끌려가겠지만, 그때는 부모님 뿐 아니라 주위 어른들이 복스럽게 잘 먹는다며 오히려 내게 칭찬했었다. 나는 국밥을 잘 먹는 것만으로도 착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돼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면, 목구멍까지 밥알이 가득 차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걷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마치 전투에서 장렬히 싸우고 부상당한 이순신 장군처럼 아버지에게 기대 누워야만 했다. 계산을 마칠 때까지 누워있으면 아버지는 나를 가로로 번쩍 안아 들었고, 어머니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차 뒷 문을 열었다. 키가 작았던 나는 갤로퍼라는 차의 뒷자리에 일자로 누워서 집까지 호송되었다. 집까지 가는 동안에 소화될 리가 없었다. 타는 과정의 반대로 어머니는 차 뒷 문을 열었고, 아버지는 나를 안아서 방바닥에 눕혔다. 돼지 국밥을 먹은 날에는 항상 배가 불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눈만 깜빡이다가 잠이 들고는 했다.


이십 년 정도 지나 서른이 넘은 지금도 아버지와 일주일에 한 번은 돼지 국밥을 먹으러 간다. "이모, 여기 돼지 국밥 두 그릇 주세요". 지금도 아버지는 뜨거운 국밥을 빨리 먹는다. 내가 깍두기며, 양파며, 마늘과 같은 밑반찬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국밥에 들어있는 내장과 고기 한 점마다 새우젓을 올려 음미하며 먹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항상 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국밥을 먹고 계산까지 하고 온다. 이제는 나도 돈을 버니까 국밥 정도는 내가 사겠다고 하지만, 아직 아버지 눈에는 국밥을 억지로라도 한 그릇 다 먹기 위해 거침없이 바지를 풀어헤치던 초등학생처럼 보이나 보다.

@ Little Plant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그렇다고 아예 달라진 것이 없지는 않다. 이제 아버지도 환갑을 지난 나이기에, 육고기를 많이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함께 나온 소면을 먹지 않거나, 밥을 말아먹지 않고 그냥 국처럼 떠먹기도 한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집에서나 봤던 수개월 치의 약봉지도 이제는 아버지 집에서 볼 수 있고, 아버지는 그 약을 항상 식후에 먹는다. 나도 결혼해서 아기를 낳게 된다면 함께 돼지 국밥을 먹고 싶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다가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수개월 치의 약봉지가 집 안에 쌓이는 날이 오겠지?'하고 씁쓸한 망상도 함께 한다.


몹쓸 상상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때는 작년 겨울이었다. 엄지발가락이 미친 듯이 아파서 잠에서 깼다. 요즘에는 축구도 안 한지 오래돼서 발을 다칠 일도 없었는데, 도통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즉시 '근육통, 발 통증, 발가락 붓기…' 등을 검색했다. 증상들로 미루어 보아 이 고통의 이름은 통풍이라는 것을 알았다. 통풍이라는 사실보다 내게 더 끔찍했던 것은, 앞으로 돼지 국밥을 먹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통풍에는 별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그중에도 육류는 꼭 피해야 하는 음식 중 하나다. 심지어 고기를 우려서 육수를 만드는 돼지 국밥은 통풍 환자에게는 절대 먹어선 안 될 음식이었다.


아마 잦은 과음과 과식이 통풍의 원인이긴 했겠지만, 그간 비워왔던 수많은 돼지 국밥도 아마 통풍에 걸리기까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통풍 전문인 류마티스 병원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 설명들도, 유튜브나 네이버 블로그에 통풍 관련 정보들을 찾아봐도, 통풍은 약을 먹으면 조절이 가능한 질병이었다. 그런데 치료와 관계없이 약을 먹어야 하는 더 매혹적인 이유가 따로 있었다. 약을 먹으면 음식을 가려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돼지 국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 Aarón Blanco Tejedor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꾸준히 약을 복용만 한다면, 돼지 국밥 정도는 먹을 수 있다. 이 사실은 죽음의 문 턱까지 갔다 다시 삶의 기회를 얻은 것 같은 삶의 희망을 느끼게 했다. 나도 아버지처럼 병원에 갈 때마다 2개월 치 통풍 약을 처방받고, 식탁 서랍에는 수개월 치 약이 쌓인다. 하지만 돼지 국밥을 먹을 수 있기에 매일 약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산 사람은 역시 돼지 국밥을 못 먹으면 안 되(돼)지. 나는 돼지 국밥 집에 들어가며 자리에 앉기도 전에 외친다. "이모, 여기 돼지 국밥 한 그릇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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