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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y 04. 2023

경상도 남자가 효도하는 법

누군가에게는 아버지 선물을 사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아버지를 포함해 경상도 남자만 셋이 사는 집에서는 매우 유별난 일이 될 수도 있다. 감정 표현에 서투른 우리 집 경상도 남자들은 놀랍게도 서로의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다. 자칫 잘못하면 선물 주고 감사 인사를 듣는 것보다 "만다고 이런 걸 사왔노?"라며 얼굴 붉히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난생처음 아버지 선물을 사기 위해 신세계 아웃렛으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받을 때마다 모아둔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 22만 원도 챙겼다. 너무 어려서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선물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선물을 했다 하더라도, 유치원 미술 수업 시간에 그리거나 만들었던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버지에게 선물했던 기억은 내게 없다. 내 나이가 29살이 될 때까지.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키워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서 '대(大)효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효도'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한겨울 필수품인 패딩이었다. 아버지는 매년 겨울이면, 무슨 브랜드인지도 모를 두꺼운 양털 점퍼를 꺼내 입었다. 어떤 브랜드 옷을 입는지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족히 이십 년은 넘어 보이는 점퍼를 아버지는 매년 꺼내 입었고, 아버지가 오래되고 촌스러운 점퍼를 입는 것이 싫었다. 오래된 점퍼만큼이나 아버지에게 관심이 부족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번 기회에 '대효도' 선물로 아버지의 겨울 외투를 교체해야만 했다.

@ Ben White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친구들로부터 패딩 가격의 악랄함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백화점으로는 가지 못하고, 그나마 저렴한 아웃렛으로 향했다. 아웃렛이 '대효도'라고 부를만한 다짐에는 걸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꼬깃꼬깃 모아뒀던 신세계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백화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알려진 곳이다. '대효도'를 할 수만 있다면, 모아둔 상품권뿐 아니라 당근 마켓에서 추가 상품권 구매도 불사할 예정이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이 저렴할 경우도 대비해서 미리 패딩의 가격 조사까지 마쳤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서 '대효도'의 부푼 꿈을 안고 아웃렛에 도착했다.


아웃렛은 사실 처음 가봤다. 명품이나 브랜드 같은 것에 관심이 없던 나는 아웃렛도 당연히 갈 일이 없었다. 종종 친구들이 아웃렛에서 건졌다며 옷이나 명품 등을 뽐낼 때, 그곳은 막연히 이월 상품을 저렴하게 파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시즌이 지난 상품이니까, 저렴하게 파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했다. 혹시나 조금 비싸더라도 괜찮았다. 내겐 22만 원의 상품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겨울처럼 냉혹했다. 할인하는 시기를 잘 맞추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백화점이랑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나마 저렴한 패딩은 옷의 두께가 얇거나 유명 브랜드가 아니었다. 이 정도로는 차마 '대효도'를 달성할 수 없었다. 내가 조사하고 갔었던 브랜드의 패딩은 가지고 갔던 상품권을 제외하고도 적어도 50만 원 이상의 추가 지출이 불가피했다. 월급과 내 생활비를 계산해 봤을 때, 상품권을 사용하고 신용카드를 긁는다면 사지 못할 정도의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패딩 앞에서 돈과 효도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고, 나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Cardmarp Ni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마음이 불편한 채로 며칠을 보내다, '무신사'라는 쇼핑몰에서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를 하는 것을 보고 빠르게 패딩을 찾아봤다. 아웃렛에 갔을 때 원했던 브랜드는 아니지만, 내가 입고 있는 패딩과 같은 브랜드에서 파격 할인을 진행했다. 나는 상품권 없이도 30만 원 대에 패딩을 구매할 수 있었다. '대효도'가 '중효도'로 떨어진 감은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스스로 느끼면 되는 감정일 뿐이다. 그 아리송한 감정이 아버지에게는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달되지 않아야만 했다.


나는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하고 얻은 묵직한 전리품인 패딩을 손에 들고서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아버지 집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던 아버지에게 '나름의 대효도' 선물인 패딩을 입어볼 것을 명령했다. 아버지는 전혀 영문을 모른 채, 포장을 뜯고 패딩을 입었다. 나는 사이즈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영수증을 쿨하게 찢으며 한 마디 했다. "올 겨울에는 오래된 점퍼 좀 버리고, 패딩 따뜻하게 입고 다니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아버지는 뭐 하러 큰돈 들여 이런 걸 사 왔냐며, 이럴 돈 있으면 얼른 결혼이나 하라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대꾸하지 않고 본가를 나섰다. 호방하게 나오는 순간에 '중효도'가 다시 '대효도'로 격이 상승되었다.


나는 경상도 남자스럽게 효도했고, 아버지도 경상도 남자스럽게 선물을 받았다. 나는 난생처음 아버지에게 선물했다는 것 자체에 스스로 감명을 받았다. 본가를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러나 신난 발걸음을 채 몇 발자국도 걷기도 전에 나는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아버지가 항상 주차하는 곳에 아버지 차가 아닌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아버지 차는 다른 구석에 주차되어 있었다. 본가의 주차 방식은 호실 별로 주차 자리가 배정되어 있다. 따라서 그 자리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Mink Mingle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차를 빼달라고 전화번호를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차 비상연락처는 아버지 전화번호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동생이 아버지 차를 새것으로 바꿔드렸던 것이다. 물론 나는 사회복지사고, 동생은 소방관이기에 월급 차이가 꽤 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차와 패딩의 금액적 간극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백화점 상품권을 가져갔음에도 아웃렛에서 패딩하나 사지 못 했는데, 동생은 아버지에게 신차를 선물했다. 헛헛한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가 없었다.


나는 고작 패딩을 들고 개선장군처럼 행사했지만, 동생은 정복자 칭기즈 칸이었다. 경상도스러움에 만족하며 '대효도'로 격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소효도' 칭호마저 잃을까 걱정해야만 했다. 나는 동생의 선물을 보며 아버지를 향한 아낌없는 마음에 위대함을 칭송할 수밖에 없었고, 동시에 동생의 무시무시한 정복력에 무릎을 꿇었다. 한동안 정신 혼미 상태에 빠졌다. 나는 패딩하나 사면서도 벌벌 떨어야 했던 이유와 동생은 아버지에게 새 차를 선뜻 선물할 수 있었던 용기의 차이를 알아야만 했다. 이를 알 수 없다면, 정신 혼미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크기 차이였을까?' 동생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동생에 비해 그리 작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월급 차이 때문이었을까?' 돈으로 사랑의 크기를 측정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생각되었다. 이 생각 또한 흔쾌히 동의할 수 없다. 월급 차이가 많이 나긴 하지만, 10배 이상 차이 날 리 없다. 많은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문제를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돈이 아니었다.


패딩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대효도'와 '소효도'가 마구 널뛰기했던 것은 내 마음속에서 생기는 변화 때문이었다. 내가 선물한 물건은 달라지지 않지만, 이를 대하는 내 마음의 태도가 '대효도'와 '소효도'를 결정했다. 심지어 동생의 선물과 비교하면서 내 마음의 널뛰기 폭은 넓어졌다. 동생의 차 선물과 비교를 멈추자, 패딩이 아버지에게 가져다 줄 온기만큼 내 효도력도 다시금 상승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를 향한 진심이 담긴 내 마음이었다.


한 번이 어려웠지 두 번째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아버지도 경상도스러움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아버지와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밥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내게 말한다. "재용이 덕분에, 밥 잘 묵었네". 아직도 전화는 필요 용건만 간단히 하지만, 아버지의 전화 인사는 더욱 다정해졌다. "아들, 밥 먹었나?". 나도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선물 가격도 점차 올라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아버지가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퉁명스럽게 좋아하실 모습을 생각하면 당장에 내적 고민을 멈추게 된다. 그렇게 유별난 일들이 유별나지 않아 졌고, 아버지를 보는 나날들은 특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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