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마트 플렉스
“이런 것 사봐. 이런 건 안 필요해?”
옆에서 쇼핑 도우미처럼 이것저것 좋은 것을 추천해 줘서 갈수록 대놓고 담아버렸다. 평소엔 가성비를 생각하며 치열히 머릴 굴리며 테트리스처럼 샀던 식자재들을 별 고민 없이 담는 기분이 꽤, 아니 많이 즐거웠다.
좋아하는 과일, 고기, 그 밖에 등등을 야무지게 담아 계산대에 줄을 서는데 여기에서 선배와 나와의 성격차가 느껴졌다. 난 선배와 나를 각각 다른 줄에 세워서 더 빠른 줄에서 계산하려고 하는데 선배가 내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가 옮겨간 줄로 따라왔다. 설명을 해도 잘 이해를 못 해서 놀랬다. 이건 완전한 성격차이. 선배는 은근 느긋한 성격이었던 것이다. 조금 더 빠르게 계산하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나와는 다른.
처음엔 그게 답답하게 느껴지다가 나중엔 나도 느긋해졌다. '그래 좀 늦으면 어떠나' 하면서.
그러다 마지막으로 피자를 사러 갔는데 카트는 가게 안 입장 불가였다. 주문한 후 선배가 화장실에 갔고 그동안 나는 기다리는 줄을 서면서 가게 밖에 세워놓은 카드의 물건도 봐야 했다. 별일 없을 테고 역시 별일 없었지만, 기다리는 동안 물건이 없어질까 불안해하는 마음까지 느긋해 지지는 못했다. 게다가 사람이 많아서 더 신경이 곤두섰던 것 같다. 난 사람이 많은 곳에선 내 밥그릇 챙겨 먹기가 더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고 그래서 날카로워 지곤 한다.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내 순서는 저 뒤로 가버릴 것 같은 기분. 반면에 선배는 항시 느긋하고 여유 있어 보여서 그게 좀 부럽기도 하고.
선배 덩치가 커서 그런 점도 있을까. 그런 풍채의 사람들은 항상 좀 여유 있어 보이던데.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큰 박스 하나 넘게 물건을 잔뜩 싣고 와서 집에 정리하는 데에도 한참이었다.
그날 저녁 메뉴는 마트에서 사 온 가리비 찜. 달고 고소하고 짭짤한 가리비를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듣기론 남자 친구가 냉장고를 채워 주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이런 경우가 정말 처음이었고, 이렇게 끼니까지 챙겨주는 남자가 있다니 싶었다.
마음이 편안한 날들이었다. 내가 필요한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려 주고, 마음껏 응석 부릴 수 있고, 뭔가 고장 나면 고쳐달라 할 수 있는 사람, 컴퓨터가 잘 안 되면 물어보고, 돌봄을 받는 기분. 혼자가 아닌 날들이었다. 의지할 사람이 있다. 든든한 이가 내 곁에 있다.
당시의 나는 사랑받는 이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