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생각들이 엉켜
매듭을 풀고자 새벽이 되기를 기다린다.
하늘색이 점점 옅어지는 순간, 노을이 태어나는 순간
그때.
자연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터였다.
날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오랜 매달림과 많은 시도 후에도
비행기엔 나를 위한 자리가 없어
결국.
타국의 차가운 공항에 남겨졌다.
차라리 혼자라면 어디라도 껴 가겠는데.
딱딱한 벤치에서라도
웅크리고 자는 것도 가능할 텐데.
하필. 지금.
내 옆엔 동그란 눈으로 황당해하고 있는
세명의 아이가 있었다.
밤 10시 30분.
가장 가까운 호텔에
이제껏 내보지 않은 큰돈을 지불했는데
약속한 바와 달리
침대는 달랑 싱글 세 개뿐.
짧은 영어로 최선을 다해 항의하곤
방을 바꿔주길 기다리는데
가슴이 얼마나 미친 듯이 뛰는지.
낡고 바랜 운동화가 갑자기 부끄러워지고
떨면 안 된다고 입술을 깨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두 손을 불끈 쥐는 일.
지지 마. 난 정당한 요구를 한 거야.
난 아직 세상을 믿어.
그렇게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룸에 대해 항의하는 한국인들의 고함소리에.
데스크에 서있는 이국의 매니저를 향해
고국의 언어로 내뱉는 욕설과
참지 못하고 뱉어낸 십 대 같은 단어의 나열로
내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내가 하는 말도
나에게 하는 말도 아닌데
많은 사람 중에 나만 알아듣고
듣는다는 이유로 불쾌해지는 슬픔.
뚱뚱해가지고, 큰 대가리에 기름을 처발라가지고...
유독 한국에서만 적용되는 엄격한 외모의 잣대로
못 알아듣는 사람 앞에서 지들끼리 히히덕거리는 일.
그런 일은 정말. 도무지 하나도 재미있지 않은데.
그 자로 너를 재어봐도
역시 도려내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닐 텐데...
가끔 여행지에서 우리 조용히 이야기하자
또는 너 줄 좀 잘 서라며
자기끼리 단도리하는 중국인들을 본다.
그들도 역시 불편했을 것이다.
목소리 크고 상식 없다고 여겨지는 자국민에 대한 편견.
유독 룸 컨디션에 민감하고
성에 안차면 온 힘을 다해 리뷰를 남기는
우리 백의민족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거지로 업그레이드를 받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묻는 이에게.
돈이 없으면 좀 우아하게 징징거릴 수는 없었느냐고
창피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핀잔이라도 해주고 돌아설걸 하다가
이제 와서 무슨...
그마저도 유치해져서 힘이 풀렸다.
그들에겐 나나, 내가 창피해하는 저이나
똑같은 어글리 코리안이었겠지.
오늘 치른 세 번의 전쟁 후에
'너나 잘해.'
내가 나에게 던지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