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시 반
애덤리바인이 침대 맡에서 저를 깨우네요
내일의 거사를 위해 오늘은 기필코 푹 자야해! 하며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광선을 차단하는 데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습관처럼 결국 음악을 틀어놓고 잤나봐요
밤새 숙면을 취하려고 노력한 청신경이
목적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거겠죠
전 세계의 섹시보이스를 가진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너 자냐? 자지말고 좀 들어봐"
하면서 귀를 간질이는데
편히 잘 수 있으리가요
잃어버려도 그만일 싸구려 가방안에
대충 챙겨놓은 짐을 확인해요
여권 돈 휴대폰이 확실히 있네요
이거면 됐어요
며칠은 씻지도 갈아입지도 않고 버틸수 있는 인내심은 군대에서 확실히 배웠으니까요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요
오늘의 목표는 가장 먼저 출발할 수 있는 비행기를 타는 거예요
가장 이상적인 김포발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어요
재수가 좋네요
도착하면 11시
하루동안 오사카 곳곳을 다닐 수 있겠어요
네이버 기상정보에 의하면 오사카는 지금 비가 내리는 중이예요
비오는 오사카성의 모습이
얼마나 쓸쓸해 보일까하는 생각에 들뜨게 되요
일본은 좀 슬퍼야죠
그걸 보는 저 역시 그래야해요
그래야 좀 덜 미안하거든요
끔찍한 비행기 안에서 1시간 반을 보내고
간사이 국제 공항에 내려
공항선을 타고 난바시내로 들어가요
돔보리 크루즈를 타고 강을 따라 도톤보리 시가지를 구경하려고요
만능엔터테이너라는 구글맵을 들고
가리키는 대로 따라 걷는데
이 녀석! 마치 광화문역 쯔음을 가리키곤
이곳 어딘가에 경복궁이 있다는 식이예요
근데 괜찮아요
물어물어 가는 것은 제 특기거든요
게다가 이곳은 저와 비슷한 레벨의 영어실력을 자랑하는 일본이니까요
아! 주의할 점이 있네요
물으면 일본인들은 길을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아요
대신 목적지가 보이는 곳까지 동행을 하죠
'아니... 같이 가달라는 게 아니고 알려달라구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가는 길이야. 조금만 돌아가면되'
그들은 그래야 마음이 편한가봐요
꽤 긴 거리를 동행하는 동안 일본인 여성 두명과 말꼬가 텄어요
지들끼리 일본어로 속닥거리는데 다 알아 듣겠더라구요
일본녀1 한국인 같지 않아?
일본녀2 중국인 일 수도 있어
일본녀1 니가 물어봐
일본녀2 뭐라해야 하지?
일본녀1 (망설이다가)웨얼 얼 유 프롬
코리아! 나 한국사람이야
반갑다며 한국가수와 간단한 한국말을 하며 친밀감을 드러내네요
같이 사진을 찍는데 하나 둘 셋 김치!를 한국어로 하더라구요
저도 '이찌 니 상' 까진 안다고 자랑했죠
그리고 제 사진기를 들고 찍을 때는
광대승천 동안미모를 위해서 "김치" 보다는 “개새끼"를 하면 더 좋다고 알려줬어요
귀여운 아기 강아지 개새끼요
오사카 여행의 적기는 완연한 봄이죠
벚꽃과 매화가 절정을 이루니까요
하지만 그 시기에 온다면 천지에 널려있는 벚꽃보다 사람수가 더 많을거라고
저는 장담할 수 있어요
오늘처럼 오자마자 크루즈를 탈 수 있는 행운도 없을거구요
오사카 주유패스를 내밀고 당당히 무료로 탑승합니다
오사카주유패스는
오사카에서 기름을 넣을 수 있는 패스가 아니라는 걸
저도 오늘에서야 알았네요
이 패스만 있으면 이곳을 포함해
오사카성쿠루즈와
한국인에게 인기있는 주택박물관,
우메다공중정원 등 다양한 볼거리를
추가금없이 즐길 수 있어요
지하철과 버스도 그냥 타구요
주유패스 금액이 2900엔 정도이니
하루종일 오사카를 누비는 금액치곤 저렴하죠
크루즈를 타고 도톤보리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거리를 배회하며 상점구경도 했구요
이 나라엔 있는데 우리나라엔 없는 것.
여행 중에 그런 것들을 찾는 건 참 재미나요
그 중 맘에 드는 아이템을 하나 찾아냈죠
가라블라우스(?)예요
하나 살까요?
스웨터 안에 입기에 예쁘겠어요
변태스러운 코디도 가능하겠네요
너무 재미가 나서 혼자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네요
그리고 오사카성을 느린걸음으로 한바퀴 돈 다음
오사카성 주변강가를 도는 아쿠아라이너를 타고
앞에 앉은 아주머니께 폰을 드리며
"스미마셍! 포토 쿠다사이"
아는 단어를 나열합니다
'스미마셍' 과 '쿠다사이' 사이에
원하는 단어 하나만 집어넣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어요
많이 흔들렸으나 다시 부탁하기 뭐해 단념하고
오사카에 관한 설명을 듣습니다...
라고 하기엔 좀 찔리네요
듣긴했지만 알아듣진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죠
영어와 일어 두가지 만으로 설명을 하고 있거든요
이상하지요
표지판마다 한국어가 있고
난바시내 조그만 상점에 가더라도 모든 안내방송을 한국어로 들을 수 있는데요
그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빼곤 이 지역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도요토미를 찬양하는 방송을 굳이 그들의 언어로 들려줄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영어로 설명을 들으며 1시간 도는 동안 3분간격으로 그 귀여운 아기강아지 이름이 나와요
그 새끼는 수완이 좋아서 일본을 통일했는데
미천한 출신 때문에 지위에 위협을 받자 과시적으로 청나라를 치려하죠
그리곤 가는 길목인 조선이 협조적이지 않자 치밀하게 계획한 임진왜란을 일으킵니다
부하들은 전장에서 죽을 것을 명령해놓고
정작 자신은 정유재란 중에 싸우지도 못하고 병들어서 죽어요.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하니
그냥 퉁쳐서 불쌍한 새끼라 치죠
근데 저분. 어조만 들어도 알겠네요
"일본을 통일한 위대한 무사 도요토미 히데요시!" 라고 말하고 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