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을 걷다5

카타비치와 카타마마

by 윤진


아침부터 태풍을 연상시키는 바람이 부네요

오늘도 바다 수영은 글렀나봅니다


낮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내고

먹고

소화시키는 데에 할애했으니

오후에는 슬슬 나가보려 합니다



호텔에서 나와 10분만 걸어가면

카타비치라는 한적한 해변이 나옵니다

가는 길은 표지판으로도 잘 되어 있지만

옷을 반만 입은 듯한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도 됩니다




뒷모습이 무척 아리따운 여인네가고 있습니다

가끔 제가 남성호르몬이 과다한가

생각이 드는 것이

자꾸만 이쁜 여자한테 관심이 간다 이겁니다


갑자기 옆의 남자가 상대적으로 못나보이면서

남자의 저 까만 지갑엔 돈이 겁나 많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듭니다

제가 소매치기였다면

예쁜 여자 옆의 남자를 집중공략 했겠죠


탐스러운 머리칼을 가진 그녀가 너무 궁금하여

참다못해

슬쩍 앞으로 가서 얼굴을 확인합니다




음. . .

괜한 짓을 했습니다





해변에 다다랐습니다



평온한 풍경을 잠시 느껴보고저

모래 방석위에 앉아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니


슬쩍 바람이 지나가는데

그 느낌이 익숙합니다


지난 여름 해운대에서 불던 바람이

태평양을 따라 돌고돌아

뱅골만까지 들어왔나 싶어요

아주 습하고 더운 공기인데

알콜 냄새가 적당히 섞인것이

딱 해운대의 기운입니다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되는지를

단디 일러두는 태국정부입니다


간단한 스낵은 되나

과하게 마시고 꽐라되는 것은 안되며

여기선 비와도 우산을 쓰면 안되...는게 아니고

파라솔 설치가 안되는 거였네요




민원을 처리하는 화장실맨이 보이네요


그래

니가 보기엔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말야

우린 말야

먹는 것이 겁나 싼 대신

내보낼 때는 소정의 금액을 받아

씻는 건 20밧이고

싸는 건 10밧인데

큰거 작은 거 구분없이 10밧만 받을게

내가 일일이 들어가서 큰 건지 작은 건지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

뭐? 먹고 죽을 돈도 없다구?

그럼 바다로 들어가

거긴 프리야




태워도 태워도 까매지지 않고

빨개져 버린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납니다

섹시하게 그을린 여자친구에게

짜증을 내고 있네요



수영금지 구역에 암수가 정답습니다

굳이 비키니차림으로 바다에 누워서

벌써 몇시간째 하늘과 서로의 얼굴만 보며 얘기하고 있는 그들은

처음부터 멀리 떠나오는 것이 목적일 뿐

애초부터 바다따윈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기의 연인들은 낮에도 별을 셀 수 있겠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서 때때로

누군가가 깃발을 흔들고 있는데

빨간색

파도가 높으니 수영하면 안된다



노란색

주의해서 수영해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무시하고 바다에 들어가서

아저씨들 귀찮게 하는 인간들

꼭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우리

하지말라는 짓은 좀 하지 맙시다



아이들은 그와 상관없이 모래놀이를 즐깁니다



땅굴도 파고



지하수를 파고



죽방도 치고



모래떡도 만들면서



각자의 세계를 건설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열 두살 쯤 되보이는 아주 수줍음 많은

흑인소년이 쓴 글씨입니다


아이 러브 타일랜드 라는 글씨를 보고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저는 찍지 마세요

근데 저쪽에 가면 제가 다른 글씨도 써놨어요

라고 알려줍니다

구불구불한 선을 따라가니

그 녀석보다 2배는 키가 큰

아이 러브 푸켓이 있네요


아주 샤이한 소년이

바다를 향해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해

대신 큰 글씨로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때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가고

곧 썰물에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랑한다구요

푸켓을요

어쩌면 푸켓 누군가를요




너무 많이 걸었습니다

처음부터 이 해변은 너무 길어서

편도도보는 가능하나

왕복도보는 불가하다 생각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저는 두번을 왕복했고


이렇게 쉬지 않고 걸으면

신고 있던 쫄이가 다이할 줄 알았는데

제 발목이 먼저 다이하고 말았습니다


목마름과 고통에 헐떡이며 마실 것을 찾고 있는데

마침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저 멀리

병나발 부는 자 누구인가

이 아름다운 모히또 해변을 바라보며

케트 마시는자 누구인가



거기가 바로 카타마마였습니다

푸켓만 8번을 다녀간 친구가

강추하던 식당이었죠


앉자마자 당당히

없으면 말고 라는 식으로

한국어 메뉴판을 요구합니다


신기하게 있다면서 가져오네요

푸켓에서 한국어메뉴판을 요구한 많은 식당 중

유일하게요


근데 이상한 것이

분명 우리말로 되있는데 번역이 더 필요합니다



구글번역기의 만행이 분명하죠


새콤달콤 한 소스로 맛을 낸 해산물볶음 이라 제대로 써 주기만 했어도

주문량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사장님! 메뉴판 리뉴얼 할 때 저를 불러 주세요

제가 싸게 써드린다니까요




역시 구운된 거군요



아 그렇습니까?

찹쌀은 끈쩍하지요

암... 그렇고 말구요



인형으로 오믈렛도 만들고



야채를 튀겨 바다도 만드는데



카레 붙여 넣기쯤이야...



급기야

주방장의 필살기!

태국을 볶아준답니다

단돈 2700원에!!



오우!! 박진감 넘치는 재료나열!

워워워~ 무슨 말이 필요해!

바질이라구 돼지고기라구 쌀이라구!


'바질로 향을 낸 청정돈육에

보슬보슬하게 찐 쌀을 곁들인 고품격 전통요리'

같은 구역질 나는 메뉴판은 치워

난 단도직입적으로 정면도전 하겠어

바질! 돼지! 고기! 쌀! 1700원!

쳐먹을꺼야 말꺼야?


아아... 알았어

먹을게 먹을게...





맥주를 홀짝거리며

노부부가 앉은 해안가 풍경을 내려다봅니다


배는 고프지 않네요

하나만 시켜서 나눠먹는게 어떨까요

남기면 아깝잖아요


오랜 여행으로 얄팍해 졌을

남편의 지갑을 배려한

아내의 사려깊은 처사였지만

예상보다 훨씬 작았던 양의 피자는

순식간에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없이 서로가 보고 싶은 풍경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두 사람이 속해있는

풍경을 바라봅니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독일어도 아닌

제가 구분할 수 없는 어떤 언어가

아주 따스한 바람을 타고 잔잔히 들려옵니다


해변에 딱 달라붙어 누워

실 틈 없이 입을 맞추고

재잘거리던 젊은 여인들과 달리

우리가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이겠지만요


오랜 부부들에게는

특별한 말이나 행동 없이도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뭔가가 있거든요

긴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고나면

같은 시간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답니다



네...

저도 조금은 알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잘 나가고 즐거울 때에도

그 사람이 무엇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으면

전혀 행복하지 않더군요


제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대신

그에게 나쁜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항상 평온하면 좋겠다는 기도를 해요

지금 두 분처럼

편안하게 한곳을 바라보는 것

그게 행복인 것 같더라구요




이 사람이 되어봤다

저 사람이 되어봤다

분위기에 취해

타인놀이를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요



이제 돌아가야죠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푸켓을 걷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