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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Dec 09. 2016

체스키 크롬로프를 걷다4

싸다 예쁘다 그러나 심심하다?

체스키크롬로프에서의 3일째,

마지막 날입니다


혹시 오늘도 못 가본 곳에 대한

아쉬움이 발목을 잡을까 싶어

새벽부터 나갑니다

먼 발치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마을을 둘러보며 평화를 빌다가

산책을 나온 주민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말을 타고 출근하는(?) 아저씨를 부러워해 봅니다

자동차가 구석까지 들어올 수 없는 이곳에서

이보다 효율적인 교통수단은 없겠네요


저 말은 30분간 시속 60키로로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답니다

출근시간 말을 타고 올림픽대로를

신나게 달려가는 저를 상상해보니

이거 한마리 들여야겠다 하다가

한달에 200만원어치 먹다는 말을 듣곤 바로

포기합니다

빠른 포기는 저의 장점 중 하나



coop이라는 작은 슈퍼가 마을에 양팔간격으로 세개가 있는데

 깜짝 놀랄 시간

(오후 6시)에 문을 모두 닫아버리기 때문에

미리미리 먹을 것을 쟁여두어야 합니다


사랑스런 맥주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어

봐주는 데에만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섭섭하지 않도록 구석에 있는 맥주병까지 골고루 시선을 주다가

미스코리아 선발하듯 심사숙고 끝에

진선미 3병을 선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팔고 있으나 완전 다른 맛인 코젤맥주는

500cc한병에 우리돈으로 750원 인데

자세히 보면 아래 3크로나, 150원이 따로 붙었습니다



이 것은 공병에 대한 보증금 같은 것으로



이틀동안 모은 6병을 가져갔더니 새로운 맥주 한병을 사고도 남을 돈을 거슬러줍니다



매일 6시 문닫기 직전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맥주를 소중하게 안고 가는 동양여자를

늘 웃으며 반기던 이모입니다



몇백년전에 지어진 위대한 문화유산에 구멍을 내어

도발적인 광고를 한 속옷 가게는

얼마나 대단한가 기대했더니



매장 안이 우리 어머님들 좋아하시는

BYC의 매장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합니다

가게에서 나름 가장 야한 속옷과

다소 추워보이는 두여인을 외부에 비치하여

관객의 시선을 잠깐 잡아 놓는데에는 성공합니다



마을의 옷가게는 딱 두개가 있는데

미안하지만 둘다 촌...스럽 습니다



체코의 자체브랜드는 거의 없습니다

공산주의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런 속에서도 이 BATA

최고품질의 가죽신발 꼽힙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체코국기 자체가 로고 입니다



대륙으로 둘러싸인 체코의 아쿠아리움에서

'살아있는 물고기'가 있음을 광고고 있는데

홈플러스에만 가도 흔히 보이는 '생선'들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우리나라 동물원에도

나미비아 소년들이 오면 얘기하겠죠

흔히 보는 기린 코끼리 사자 같은걸 왜 저리 가둬놓고 신기하게 보느냐구요



숨바꼭질을 하다가 어느 하나 길을 잃어도 좋을 골목과



뻘짓하면 다칠거라 경고하는 수많은 난간을 지나치니



체스키크롬로프 성에서

루터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종교개혁과 관련된 내용이겠죠


빨간 모자아저씨는

주교가 서민들의 사이를 뚫고 성으로 바삐 들어가는 별 임팩트없는 장면을 

12번째 촬영하고 있는

꼬장꼬장한 감독입니다



중세에 만든 터전에

중세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현대인으로서 바라보는 감정은 참으로 묘합니다

꿈을 꾸는 것만 같다가

내가 영화속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위해 쇼를 벌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막내와함께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문 앞에서 만난 배우 중 한 사람이

뒤돌아 서서 난데없는 사과를 합니다


아! 미안해

니가 왜?

앞만 보고 왔더니 니 아이를 못 봤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자기가 들어가고 나서 문을 잡아줬어야 했는데

들어오는 아이를 보지 못했고

그래서 제가 뛰어와서 문을 열어야했고

미안하다고 하고 가려했는데

니가 왜 미안하냐고 되물어서 당황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인 것 같았습니다


아... 유어 웰컴이야

우리 나라에선 자기 문은 자기가 열


다음에 만나면 아이들도 꼭 신경써서 문을 열어주어야겠다는

시키지도 않은 약속 및 다짐을 하고 가던 길을 갑니다


여기선 다들 이런지

이 사람이 착한 건지

아니면 배우로서 이미지 관리를 한건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만나 이야기를 나눈 현지인 중에

가장 미남형의 얼굴을 가진 것 만으로

제 할 도리는 다 한겁니다

금방 핫쵸코 한잔을 손에 쥔 것처럼 제 마음이 따뜻해졌으니까요




딸바보 아빠는

20키로그람급 소중한 막내딸을 안고

기꺼이 비탈길을 올라



6살 인생에 평생 담아두고 싶은 장면을 선물하는 것을 끝으로



체스키크롬로프에서의 여행을 마칩니다




어느새 엄마와 키를 겨루며 더욱 의젓해진 큰 딸과

어딜가도 몇년 산 제 집처럼 편안하게 적응하는 작은 딸

새로운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이끄는 막내 딸


이 아이들이 언제고 고단한 하루의 끝에

 6살, 9살, 12살에 엄마와 함께 걸었던 체스키크롬로프의 정다운 길을

그저 꿈처럼만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네요




체코의 오랜 역사가 깃든

프라하로 다시 이동하기 위해 터미널로 갑니다



체스키크롬로프 버스터미널은

동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로

충격적일만큼 못생긴 건물에

집히는 대로 갖다 꽂은듯 나무가 심어져있습니다

휴일엔 아예 열지도 않아

인터넷 예매를 못한 여행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죠

선조들은 건축기술이 갖춰지지도 않은 시대에 저렇게 예술적인 건물을 지었는데

후손들은 보란듯이 표정없는 네모 상자를 세워놨고

여행객들을 가장 먼저 맞는것도 저 성의없는 건물이라니

미안하지도 않나봅니다

니네 동네 사정이니 그런가보다 하고,

 

우리는 이제 쌔끈한 노랑색의

스튜던트 에이전시의 버스를 타고 3시간을 가게 될겁니다

이름도 색깔도 스쿨버스를 연상케 하지만

이 회사는 학생들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저 분홍 유니폼을 입은 분이 버스승무원 입니다



인근지역 왠만한 여행지는 다 갈 수 있는 이 버스의

가격은 날짜와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저희가족은 5명 합쳐 20 유로!

섹시할정도로 매력적인 가격입니다



깔끔한 스낵바와 화장실



헐. . .기내화장실인줄



프리와이파이와 다양한 음악 영화 게임제공



몇가지 간식구비되어 있지만

외부음식 반입도 가능



카푸치노와 핫쵸코는 무료로 제공!

대신 물은 사먹어야 함



비행기의 이코노미석같이 빽빽한 2층에 비해


기차내부 연상시키는 1층 가족석


창밖으론 완벽한 풍경선사까지. . .

버스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보통 여행 중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패키지여행을 선택하는 이유 중에는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함도 큰 비중을 차지하겠죠


하지만 이번 가을여행 동안

체코에서 탔던 모든 기차 버스 트램 전철 등

모든 이동수단이

번잡하지도 지루하지도 

게다가 비싸지도 않아

내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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