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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Mar 31. 2017

프라하를 걷다 1

까를교의 야경이란...


여행~이란 단어의 울림은 참 신기해요


말라스트라나 지구@프라하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면서는

내 집이 최고다 싶다가도

한달만 지나면 그 '여행'이란 말에 또

금세 가슴께가 간질간질 해진단 말이죠    


마리오네트@프라하



프라하~ 라는 발음의 느낌은 또 어떤가요 

    

외곽의 흔한 풍경@프라하


입술을 터뜨리며 시작되어

폐의 모든 공기를 소진하며 끝나는 그 지명은...

오랜 구속에서 벗어난 사람이 느끼는

자유와 닮지 않았나요

프라~하~     



아놔...     

저는 지금 

그런 프라하의 지명을 넣었는데 

자꾸만 가래끓는 소리가 나는 프랑크푸르트로 되돌아 가라고 우기는 

구글 지도와 겨루기를 하는 중입니다.      


'야! 아니라고. 

내가 찾는 곳은 지금 서 있는 곳과 아주 가까운 어딘가에 있다고!'

중앙역 주위를 뱅뱅 도는 동안 프라하의 하늘은 

너무 높은 채도를 가지고 온 우리 아이들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불만스럽게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중앙역에서 구시가지가는 길@프라하


독일에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오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아까부터 큰 아이의 눈빛이 심상치 않네요.            

"넌 엄마 손바닥 안이야

엄마가 니 머리속에 들어갔다 나왔어!"

라는 말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 13살 소녀는      


"엄마 지금 그 말 취소해"     


생전 처음으로 제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도전합니다.

'헛! 이 자식이 많이 컸네?'     


'내 삶은 엄마가 써 놓은 문장 안에 다 들어있지 않아

말해도 엄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이 안에는 엄청 많단 말이야.'


"그 말 취소해 엄마... "    

"그래 취소할게. 미안해"    

용서한다는 의미로 서로 안고 나서도

땅을 보며 터덕터덕 보란 듯이 불만스럽게 걷는걸 보니.

확실한 사춘기네요

요즘 말과 행동이 유독 미워지는 중입니다.

좀 자라면 쉬울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요?

아이들과 함께 걷는 삶이란...            


   

그렇게 도착한 프라하에서의 첫 번째 숙소는 

이들의 선조의 선조부터 살았을 법한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에 들어서 있는 한인민박집이었습니다.     

"저렴한 민박이지만 아침저녁 한식을 먹을 수 있고 

특히 밤마다 무제한 맥주랑 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니까...

시설이 좀 낙후되어 있다는데 뭐 어때

프라하에 왔으니 응당 오랜 저택에 한번 묵어봐야지. 

게다가 프라하 중앙역에서 가깝기까지 하다. 

그래 결정!!"


     

별 도움은 되지 않으나 시내 곳곳에 있었던 이정표@프라하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거였죠.

빈티지가 공포로 느껴지는 낡은 계단과 

어울리지 않는 붉은 카펫이 

관절마다 삐그덕 삐그덕 

그냥 누워있는 것도 힘든데 

왜 밟고 가고 지랄이냐며 따져 묻습니다.

화장실은 위아래층이 모두 고장 나

남녀가 한 칸짜리 화장실과 샤워실을 함께 써야 했고


한인민박의 화장실@프라하


군대에서 사용하던 것과 비슷해 보이는 침대와 

유서 깊어 보였던 타월과 매트커버. 



한인민박의 3인실전경@프라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미지근한 성격을 자랑하던 라디에이터까지.

숙소 안의 모든 시설들은 여행자들의 확실한 불편을 위해 설계되어 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여기서 아이들과 하룻밤을 보낼 수 있으려나요...            

   

모든 게 불만족스러운 제 마음에도 불구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

아이는 조금 전의 일은 모두 잊었다는 듯 다시 웃고 있네요

"얘들아 맛있는 거 먹는대! 그리고 나서 마법의 성을 보러 갈 거야!"

아이의 여행에선 날씨나 숙소 컨디션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겠죠


         

중앙역인근의 체코전통음식점@프라하

갖가지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거리로 나와 무엇을 먹고 싶냐 물으니

엄마가 주는 건 뭐든... 하며 환한 웃음을 보이네요.

따뜻해 보이는 식당 앞에서, 

작은 촛불과 꽃이 반기는 둥근 식탁 앞에서

난생처음 보는 체코 음식 앞에서... 

아이는 매번 더 환한 웃음을 갱신합니다.     


모든 요리와 맥주 4잔이 한화로 4만원대였던 유대인지구의 레스토랑@프라하

    

그러니까 이제 엄마도 좀 웃어하듯이...      

못 이긴 척 웃어 보이며 아이를 카메라에 담습니다.


밤에 본 까를교@프라하


"우와~ 완전 대박! 완전 멋져!"

불과 1년 전만 해도 어딜 가나 좀처럼 과한 표현을 하지 않는

늘 착하고 순종적이던 아이였죠. 

100점 이 아니면 만족하지 않는 완벽 주위 경향이 걱정되긴 했지만

어쩜 시키지도 않은 공부를 그렇게 잘하냐는 주위 엄마들의 부러움에

많이 우쭐했던 것도 사실이예요.     


그랬었죠. 

하지만 아이가  바뀌는 데에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죠. 

"엄마! 점수가 뭐 그리 중요해?"

"애들은 집에서 공부를 하나봐..."

이제 막 점수가 중요해지기 시작한 때인데 어쩜...

물론 더 변한 건 제쪽입니다.     

손가락, 발가락이 다섯 개씩이고 

눈코 입이 온전하다면 그것만으로도 벅차던 엄마.

별 탈 없이 자라는 아이에게 무한감사를 드리던 저는 

아직 여전한지 되물어 봅니다.


다른 아이와 달랐으면.

더 뛰어나고 더 똑똑했으면. 

그러면서도 착하고 순수했으면. 

이왕이면 늘씬하고 예쁘게 자라줬으면...

끝도 없는 비현실적인 바람들이 

아이를 담는 프레임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긴장하지 말고 

재밌게 학교생활을 해달라 한건 불과 1년 전 일이었죠.

이제 이 녀석은 제 키를 넘보고 있습니다.


이미 자신만의 성을 쌓기 시작했으므로 

멀리서 지켜보는 것, 그 이상의 행동은 관심이 아닌 간섭이죠. 

따뜻하지만 벗어던지고 싶지는 않은 적정한 온기 

그것이 필요하겠죠. 압니다.

전 늘 이론에 빠삭하니까요.


 

까를교에서 본 프라하성@프라하


까를교의 야경은 넘치지 않는 온기가 뭔지 알려줍니다.

은은한 불빛에 멀리 보이는 프라하 성과 

다리를 수놓은 섬세한 조각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빨간 색 트램@프라하


빨간색 트램은 짤랑짤랑 두부 아저씨의 핸드벨을 닮은 소리로 

이따금 사람들을 멈춰 세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도 목표물을 만난 사격수처럼 

숨을 멈추고 저격하듯 사진을 찍었죠.

영원히 잡아두고 싶은 장면은 몇 분 마다 눈앞에 닥쳤고

카메라 안에는 그림 같은 도시의 모습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빛, 소리, 온도 모든 풍경이 적당합니다.


인형가게@프라하

너무 많은 자극이 불편했던 시신경에

어두운 블타바 강은 오히려 위로를 주는 듯 합니다.      

그 풍경 안에서 

모든 무거운 것들을 검은 강안으로 던져 버리자고 다짐했었죠.

최고의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열망과

그것에 밀려 내 일을 하지 못해 생기는 초조함

젊음에 대한 집착과 노후에 대한 불안.     

내친김에 많이 다니고 찍고 써야 한다는 강박까지...      



까를교에서 내려다 본 블타바 강


모두 떨어내고 나니 가볍습니다.

비로소 아이를 보고 웃음이 나오네요.      

    

달콤한 뚜르들로를 하나 사서 나눠 먹으며 걸으니 

이젠 엄마가 너무 좋다고 고백까지 합니다.

그래 그러면 되었죠.     

그런 날이 있습니다.

뭐가 어떻든 마지막엔 다 잊고 행복해지는... 

딸의 오늘 같은 그런 날 말입니다.

큰 아이가 저만큼 자라 어깨를 나란히 하니 

저에게도 그런 날이 더 많아지네요.     


참 고맙습니다.

이 아이와 여행이 허락된다는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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