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여행 준비하기

by 일희

최대한 먼 곳. 쉽게 가기 힘든 곳.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위험하거나 아주 고생스럽지는 않은 곳. 그렇게 아이슬란드는 우리의 신혼여행지로 낙점되었다. 가을 예식을 계획하며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오로라를 상상할 땐 벌써 그곳에 가있는 듯 맘이 설레었다. 예상과 다르게 결혼식 날짜가 여름으로 결정되고, 오로라 대신 백야를 마주하게 된 신랑은 눈에 띄게 실망했다. 우리 큰아버지에 의해 택일된 날짜라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신혼여행이 계획돼있는 8월의 아이슬란드는 새벽 5시에 해가 떠 밤 9시가 넘어서 지고, 완전한 어두움은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찾아온다. 달조차 뜨지 않은 어두운 날에 오로라 사냥을 나가는데, 해가지질 않으니 관측이 어려운 것이다. 그래도 지난해엔 8월 말부터 관측되었다고 하니 여행 말미에 오로라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 뿐이다.


오로라 관측이 좌절되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보다가, 우연히 캠핑에 대한 정보를 보게 되었다. 영토는 남한만 한데 인구는 30만 가량밖에 살지 않는 아이슬란드엔, 호텔도 식당도 별로 없지만 대자연을 벗 삼은 캠핑장이 그 어떤 나라보다 많다는 것이다. 오로라를 구경하고자 했을 때보다 더 설레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캠핑을 좋아하는 신랑이지만, 혹시나 신혼여행까지 가서 캠핑하는 건 꺼려할까 봐 은근슬쩍 운을 떼었다. " 아이슬란드엔 캠핑장이 많대~ 여름에는 유럽에서 사람들이 캠핑하러 온대~" 오로라를 못 봐 속상해하던 신랑의 의욕이 다시 샘솟았다. 캐리어에 담아 갈 수 있는 작은 텐트와 각종 미니멀 캠핑용품을 구입하고, 일정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로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아이슬란드이지만, 그래도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여행정보를 얻기 힘들다. 모두가 가입한다는 한 포털사이트의 카페에 접속해 정보의 바다를 헤맬 땐 배낭여행 경험이 충분히 많다고 생각함에도 좀 당황스러웠다. 가이드북을 통해 정리되어있는 정보를 접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 팁을 보고 있자니 여행의 설렘보단 피곤함이 몰려왔다. 항공권과 첫날 마지막 날 숙소, 그리고 렌터카만 예약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혼식 일주일 전에 이르러서야 대략적인 일정이 나왔다.

아이슬란드는 섬나라이기 때문에 제주도 여행을 할 때처럼 아이슬란드를 감싸고 있는 1번 도로를 따라 일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간중간 관광지를 들리지 않고 링로드만 돌아도 1,435km에 달하는 엄청난 거리를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이상의 일정을 잡는다. (실제로 2,236km를 운전했다.) 우리는 링로드 투어를 계획했다가, 고산지대를 포함한 여유로운 남부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결국 링로드투어로 변경했다.) 아이슬란드는 날씨의 변화가 심하고 이동거리가 길어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으면 지키기가 어렵고, 특히 겨울철엔 폭설과 짧은 낮시간 때문에 예약한 숙소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다행히도 우리는 캠핑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고, 그때그때 가까운 캠핑장에서 묵기로 했다.


결혼식 이틀 전부터 신혼여행 짐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여행 날짜도 길고 날씨 예측도 안되고 캠핑까지 하니 물건을 챙기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수많은 여행 경험에도 불구하고 짐을 싸는데 몇 시간씩이나 걸렸다. 28인치 캐리어 2개에 21인치 기내용 캐리어 2개, 그리고 작은 손가방과 캐리어에 넣지 못한 돗자리, 발포매트까지 챙기고 나니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차에서 사용해야 하는 휴대폰 거치대와 같은 물건들은 결혼식 이후에 챙기기로 하고 드디어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정신없는 하루가 가고, 부부가 된 우리는 아빠 차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시간이 촉박해 급하게 오느라 마지막에 챙기기로 한 선글라스와 휴대폰 거치대도 놓고 왔는데, 결국 버스도 놓쳐버렸다. 애초에 다음 차를 탔으면 되었을 것을 급하게 움직이다가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지 못해 후회가 되었다. 나의 급한 성격이 남편을 만나 조금씩 느긋해지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 이 조급함을 완전히 떨치기는 힘들다. 버스를 놓친 김에 한숨 돌리고 주변정리 후에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려면 힘드니 전날 미리 인천에서 자라는 엄마의 조언 덕택이다. 5성급 호텔을 좋은 가격에 예약해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동했다. 택시비를 지불하다가 동전 칸에 넣어둔 예물 귀걸이를 흘렸지만, 근처에 있던 친절한 호텔 직원분이 찾아주셨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배가 고파 늦은 저녁을 먹으러 근처 음식집으로 향했다. 술 한잔을 기울이며 이제 우리 정말 부부가 되었다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음이 이상하다. 우리 앞으로 트러블이 있을 때 잘 해결해야 할 텐데, 아까처럼 귀걸이 잃어버렸을 때도 화내지 않고 함께 찾아야 할 텐데, 지금 우리 너무 좋은데 앞으로도 좋아야 할 텐데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결혼한 실감이 난다. 아, 내가 이 사람과 결혼했고, 이제 쉽게 헤어질 수 없고,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결혼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고,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 지금까지 잘 맞춰왔고, 크게 부딪히는 부분 없으니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기분이 상할 때도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이니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괜찮을 거야. 극한의 상황에 오랜 시간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 열심히 살아가면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다짐과 같은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술 한병 더 마실까 하다가 내일의 여행을 위해 이만 잠이 들었다.


이제 아이슬란드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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