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에어 타고 헬싱키 환승해서 아이슬란드까지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기대하던 여행을 가는 아침인데도 눈을 뜨기 힘들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도 어딘가 가는 기쁨보단 잠이 더 중요한 날이 많았다. 그래도 어른이 되었으니 일정에 맞춰 일어난다. 출근하는 날보다는 몸이 가볍다. 전날 일찍 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캐리어에 넣지 못한 돗자리와 발포매트를 캐리어 밖에 붙이고 테이프로 돌돌 감았다. 남편이 이렇게 배송할 수 있다고 인터넷에서 보았단다. 조식을 먹으려 했건만 마지막 짐 정리를 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연되었다.
일찍 도착해 사람이 별로 없는 핀에어 카운터에서 기분 좋게 체크인을 하려는데, 돗자리를 붙인 캐리어는 위탁 수화물로 받아줄 수 없다며 28인치 캐리어와 돗자리를 박스에 포장하란다. 분실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박스 포장을 할 수 있는 택배 카운터는 어찌나 먼지, 커다란 인천공항이 이 순간만큼은 원망스러웠다.
운 좋게 커다란 박스를 구해 포장해서 돌아왔더니, 이번엔 무게를 1kg 줄여오라고 한다. 미안한 얼굴로 핀에어 테이프를 빌려주는 직원의 표정을 보며 다시 줄 밖으로 나갔다. 출발하기 전인데 여행의 설렘은 금세 사라지고 배고프고 힘들고 지친다. 테이핑 하자고 제안했던 남편은 나에게 사과를 한다.
"잘 알아봤어야 하는데 미안해..."
"오빠! 이거 우리 결혼생활의 첫 번째 역경이야!! 우리 잘 이겨나가자!!"
하고 저울 앞에서 모든 포장을 풀고 캐리어를 열어 짐을 정리했다. 프러포즈받았을 때 '우리 이렇게 살자. 어려운 일도 함께 힘을 합쳐서, 힘들지만 짜증 내지 말고 잘 해결해나가면서 살자.' 했던 그 말처럼, 첫 번째 역경(?)을 잘 이겨내었다.
어릴 적엔 신혼여행 갈 때 비즈니스석에 탈 줄 알았는데,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비상구 좌석에 앉아 레그룸이 넓어진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비상구 좌석에 앉으니 승무원들이 비상시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해주고 소소한 대화를 시도한다. 쉬운 영어와 일상적인 주제로 이야기하니 재미있다. 영어에는 항상 자신이 없었는데, 해외여행을 하면서 한 단어라도 내뱉다 보니 조금씩 늘어가는 게 느껴진다.
건조하고 사람 많은 비행기에서 잘 자기 위한 준비물과, 심심한 장거리 비행을 위한 볼거리를 준비해 가서 나름대로 편안한 비행을 마치고 헬싱키에 도착했다. 유럽연합 국가라 그런지 환승을 위해 들린 헬싱키에서 입국심사를 받았다. 앞선 사람들이 질문이 많고 서류도 제출해 걱정했는데, 아이슬란드에 신혼여행 왔다고 하니 웃으며 통과시켜준다. 나이가 들면서 기쁜 일에 축하받는 게 좋다. 어릴 땐 '기쁜 일'때문에 행복했지만, 이젠 축하의 말 때문에 훨씬 더 행복해진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여실히 느껴지는 요즘이다.
태어나 처음 밟은 핀란드 땅인데 짧은 환승시간 때문에 자일리톨만 몇 봉지 구입하고 다시 비행기를 탔다. 목적지가 따로 있음에도 핀란드 구경을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 한국인들이 어찌나 많은지 표지판에 한국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게 신기했다.
'레이캬비크'행 항공기를 탑승하려니 아이슬란드 여행을 가는 게 정말 실감이 난다. 국내선 저가항공기처럼 작은 비행기를 탔다. 좌석 선택을 따로 안 해서 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었다. 짧은 비행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온 탓인지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불편해서 잠도 안 오고 배도 너무 고파서 7천 원짜리 피자를 구입했다. 사진이 먹음직스러워 보여 얇은 토르티야 도우에 나오는 피자를 상상했는데, 손바닥만 한 피자빵이 나왔다. 아이슬란드의 살인적인 물가를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좁고 불편한 항공기는 마치 시간과 공간의 방 같았다. 언제 도착하나, 내리고 싶다 하며 괴로워하는데 힘들어하던 남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창밖을 보니 아이슬란드가 보였다. 하늘 위에서 눈 덮인 산과 U자형 계곡을 내려다보니 내가 정말 'ICELAND'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