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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희 Dec 09. 2022

러닝머신 위에서의 깨달음

어릴 적부터 백발이 된 내 모습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이었는데, 개인적인 이유로 나이 드는걸 무서워하게 되었다. 특히,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면서 내 인생에서 내가 주연이고 엄마가 나를 위한 조연이었던 것처럼, (엄마는 엄마 인생의 주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내 아이들 인생의 조연으로 밀려난 것 같은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나이 들어가겠지, 늙어가겠지, 외모가 볼품없어지고, 신체능력이 떨어지고, 정신적 능력도 떨어져 가겠지. 최신 기술이 낯설고 변화에 두려워하며 그렇게 예전 것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되겠지 서글펐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나서, 부쩍 부지런해진 내 모습이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는걸 고통스러워하고, 지각에 자체 휴강을 일삼았던 내가 이렇게 이른 아침 일어나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회사를 가고, 짬 내서 독서에 운동까지 하다니.


한 달 동안 열심히 운동하다가 출산 후 첫 월경을 맞이하여 일주일 동안 쉬었는데, 보통의 나라면 그렇게 그대로 운동을 포기해 버릴 법 하건만 오늘의 나는 힘을 내서 20분이나마 러닝머신 위를 걷고 왔다. 하루 종일 그리 쉬지 못하고 집안과 아이들을 돌보았던 날이라 (물론 남편이 있어서 체력이 남아있었지만) 더 뜻깊다.


걸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내서 운동하러 나온 나는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나로 이루어졌다. 고통스러워하며 졸린 몸을 일으켜 육아하고, 울면서 근무하고, 부족한 체력에 허덕이며 정신력으로 집안일하던 지금보다 어린 내가 보낸 시간들. 그 시간들이 더하고 더해져 조금 더 나이 들었지만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여러모로 조금 더 강해진 내가 된 것이다.


그동안은 도은이가 자라 가면서 나도 우리 엄마처럼 나이 들어가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 이렇게 지내다 보면 엄마처럼 저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한 삶을 살게 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작년의 내 정신상태를 생각한다면 정말 고무적인 일이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루하루 견뎌내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건가? 생각했는데, 사실 하루하루 견뎌내며 더 좋은 내가 되고 있었다. 다시금 노년을 기대하는 삶을 살게 되길 바란다.  그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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